[이춘호기자의 LP로드] 재즈클럽 '베리어스' (VARIOUS)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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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31   |  발행일 2020-07-31 제35면   |  수정 2020-08-17
재즈의 심장 뉴욕 '블루노트' 명음반 라이브…한여름 밤의 감성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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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로비에 있는 바 '크라우드 펍'.

빗소리와 재즈(JAZZ). 찰떡궁합 아닌가. 낮보다 밤의 정조와 코드가 딱 맞다. 코로나19 정국 탓에 기획연재물인 '엘피로드'도 잠시 동면에 빠졌다. 그 코너를 애독하는 몇몇 독자들로부터 안부 전화가 있었다. 그래서 공연장 관계자가 잘살고 있는지 뒤를 좀 둘러봤다. 공연장 대다수가 죽을 쑤고 있지만 최근 지역 코로나 상황이 다소 안정국면으로 돌아가면서 드문드문 거리두기 공연이 열리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대구 수성구 용지네거리 모퉁이에 있는 가락스튜디오와 달빛포크협회가 윈윈전략을 수립해 매주 금요일 공연 중인 '노니 장독깨기 프로젝트'다. 문을 연 지 2년차를 맞고 있는 수성구 연호동 연호네거리 코너에 위치한 재즈클럽 '베리어스(VARIOUS)'도 슬금슬금 몸을 풀고 있는 것 같아 지난 주말 그곳을 스크린해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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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유선 외 5명의 재즈 퀸텟 무대가 올라갔다. 세계 재즈의 심장이랄 수 있는 뉴욕 블루노트 탄생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블루노트 명음반 릴레이 공연의 일환이다.

1층 로비바, 2층 공연장 베리어스홀
블루 컬러벽에 건 세계적 재즈 뮤지션
국내 유일 재즈기획사 음악인과 공유

재즈광·친구와 의기투합 김우석 대표
흑인 R&B 심취, 고교시절 밴드 활동
유명기획사 두드려봤지만 잇단 좌절

나름 인정받은 보컬 실력, 트레이너 길
고향 대구 돌아와 보컬 전문학원 개원
뮤지션이 하고 싶은 음악 최대한 지원
프로듀서·연주자 연결…200여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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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클럽의 최고 인테리어는 역시 흑백톤의 재즈뮤지션 사진 액자만 한 게 없다. 2층 베리어스홀 뒷 벽면에 20여 장의 액자가 소복하게 모여 있다.

◆수식어가 없는 베리어스

녹슨 철판으로 만든 문이 열렸다. 로비엔 딱 두 작품의 그림이 걸려 있다. 정면에 로비바랄 수 있는 '크라우드 펍'이 보인다. 바닥에 빈병이 자갈처럼 깔려 있다. 계단을 지나 2층에 들어서니 공연장인 베리어스홀이 보인다. 휑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달 정도로 벽면이 단출하다. 언뜻 컨테이너 박스를 리모델링한 공연장 같았다. 남쪽 차도 쪽 벽면은 완전 통유리창이다. 그 맞은편은 바텐 스타일의 와인바가 보인다. 그리고 나머지 구역은 다 어둑하다. 홀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복층도 만들어 놓았다. 블랙톤의 천장 그리고 무대 맞은편 벽은 블루컬러로 치장했고 그 복판에 20여 장의 재즈 역사를 쥐락펴락했던 뮤지션의 사진을 액자에 끼워 걸어놓았다. 사실 재즈클럽의 액자는 그 자체로 LP앨범이랄 수 있다. 물론 재즈클럽 최고 액세서리 또한 재즈뮤지션의 흑백사진이다. 컬러 사진은 너무 촌티나서 곤란하다. 오직 흑백이어야만 한다는 게 이 바닥의 불문율이다. 다른 장식물도 음악 감상을 방해한다. 여기도 액자만으로 포인트를 주고 나머지 공간은 거의 무채색으로 감춰 놓았다. 알고보니 원래 이 자리엔 아웃도어 판매장이 있었다.

밖은 내내 빗줄기다. 통유리창에 매달린 빗방울마다 자잘한 표정이 녹아 들어가 있다.

흑인 재즈뮤지션. 그들한테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슬픔을 가려주는 역설적인 유쾌함 같은 것이다. 그들의 피부색과 달리 그다지 어둑하지 않다. 슬픔과 기쁨 사이에 재즈는 거미줄처럼 걸려 있다. 그래서 블랙도 화이트도 아닌 그냥 '블루스(BLUES)'로 그들만의 절정감이 표현된다.

◆블루노트와 밀애 중인 베리어스

기자가 찾은 날 베리어스는 아주 귀한 라이브를 마련해뒀다. 국내 유일의 재즈기획사 플러스히치가 미국의 대표적인 재즈음반사 '블루노트'의 명반들을 국내 재즈뮤지션들이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플레이 블루노트 마스터피스'를 기획했다. 그걸 베리어스와 공유한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는 뉴욕 라이브재즈의 심장이랄 수 있는 블루노트(BLUE NOTE) 탄생 80주년. 이날 강재훈(피아노)·남유선(알토 색소폰)·홍태훈(트럼펫)·김건영(드럼)·전창민(콘트라베이스)이 퀸텟의 하모니를 들려줬다. 블루노트 라인은 기타보다 색소폰·트럼펫 등과 같은 관악기가 리드를 한다. 뉴욕 본바닥에 내려놓아도 손색이 없는 연주에 지역 마니아들도 기꺼이 박수로 화답했다. 자그마한 신장의 남유선과 귀밑 털이 인상적인 패션훈남 스타일의 홍태훈의 듀엣 애드리브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국내 유일의 재즈공연 전문기획사 '플러스히치'를 이끄는 김충남(44). 그가 블루노트의 에너지를 한국에 링크시킨 것이다. 한두 건 큰 공연으로 대박 나는 것보다 좋아하는 재즈 공연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게 소원인 재즈광. 그와 죽이 맞는 사람이 바로 베리어스 공동대표 김우석(35)이다. 김우석과 손을 같이 잡은 공동대표는 그의 고교 동창 장완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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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가 좋은 모둠 소시지.

김 대표는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체격이 좋아 중학교 때까지는 유도에 올인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번 감전되면 퇴로를 찾기 어렵다고 하는 흑인 R&B(리듬 앤 블루스) 뮤직에 심취를 하게 된다. 시지고 시절 5인조 스쿨밴드의 일원이었다. 그는 나름 파워를 인정받은 보컬. 그런데 2000년 4월22일 방영된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깜짝 출연한 미국 출신의 세계적 R&B 보컬리스트인 브라이언 맷나잇의 노래가 그의 심장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는 순간 가수로의 꿈을 갖게 된다. 수순처럼 공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이를 안 부모와 잦은 불화를 일으킨다. 툭하면 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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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어스 파이팅'을 외치는 공동대표 장완규씨(왼쪽)와 김우석씨 .

일단 국내에서 음악 좀 한다는 친구들이 모이는 홍대 앞 클럽 언저리로 진입한다. 그때 인디밴드의 한 지평을 열던 8.15, 노브레인, 크라잉넛 한테 엄청 자극을 받게 된다.

"서울에 가니깐 저처럼 음악으로 한 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집을 나온 친구들이 적잖더라구요. 좀 위안이 되더군요. 하지만 그땐 현실은 안 보이고 오직 이상에만 취해있을 시점이었죠.룖

한 밴드맨이 그에게 팁을 줬다. 모든 게 자유분방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 바닥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려면 치열한 연습을 통한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실력이 절대적이라고 귀띔해줬다. 실력의 첫단추는 역시 기본기. 곧바로 자기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을 해봤다. 실력이랄 것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재수해서 서울 강남구 방배동에 있는 백석예술대에 2005년에 입학한다. 첫 수업 때 한 교수가 날린 비수 같은 조언이 기억에 남았다. "가장 무서운 뮤지션은 연주를 가장 잘하는 자가 아니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자다." 그때는 공감을 못했지만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인가를 잘 안다.

당시 가요계는 슈퍼스타K, 나는가수다 등 각종 서바이블 오디션 뮤직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밀려 나왔다. 바야흐로 최강 보컬 관련 프로가 붐을 이룬다. 임재범, 김범수, 김연우…. 정말 한국에는 왜 이렇게 노랠 잘하는 이가 많은가.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막바로 유명 기획사를 노크했다. SM, 사이더스 등 참 많은 기획사를 방문했다. 얼추 100번 정도 오디션을 봤다. 그의 우상인 브라이언 맥나잇의 'One last cry', 김연우의 '이별택시' 등을 불렀다. 하지만 단 한 곳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멘붕이었다.

그래서 그는 22세가 되는 그 겨울에 보컬트레이너가 된다. 그것만으로 돈이 덜 될 것 같아 휴대폰가게 알바도 뛴다. 한때 신림동 고시원 단칸방 생활도 했다. '레슨올'이라는 예체능 관련 연결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공유했다. 꽤 반응이 좋아 월 20명 정도 레슨을 했다. 그러면서도 월 5차례 정도 무대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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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최고 보컬의 삶도 꿈을 꾸었지만 그걸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제대로 된 라이브공연장 베리어스를 그의 친구와 함께 차린 김우석 대표. 그는 현재 '보이스 팩토리'란 보컬 전문 실용음악학원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 기획사에 잘못 투자를 하는 바람에 거금을 사기당한다. 그때 고향이 간절했다. 서울역에서 막차를 탔다. 동대구역에 내려 시지동 집으로 가던 중 수성구 만촌동 수성대 근처의 한 건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3층짜리 건물이 텅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서 당한 일을 만회하기 위해 생애 첫 보컬 전문 학원을 차렸다. 2010년 12월7일 '보이스 팩토리'란 실용음악학원을 개원한다. 그게 선순환을 하자 음악본능이 슬금슬금 일어났다. 그래서 친구와 손을 잡고 베리어스를 차린 것이다. 그는 음악의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 베리어스란 상호를 정했다. 원칙이 몇 개 있다. 갇히지 말것, 가능한한 다양한 시도를 할 것. 공연계가 늘 1% 부족했다. 공연의 인프라를 깔아주는 프로듀서와 연주자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연결고리가 되고 싶었다. 음악시장과 뮤지션의 생리 등을 고루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음악만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대중이 원하는 음악도 중요하지만 뮤지션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도록 모든 조건을 다 지원해주고 싶었다. 사전에 연주자의 특성, 밴드의 제약조건 등을 면밀히 분석한다. 그걸 위해 48채널의 야마하 디지털콘솔, 메인스피커, 다이내믹 마이크, 기타앰프, 베이스앰프, 드럼세트, 야마하모티프 신디사이저, 야마하 C5그랜드피아노, 모니터스피커 등을 깔았다.

그동안 영국의 기타리스트 마틴 테일러, 스웨덴의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의 듀엣무대, 이탈리아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 애플재즈밴드, 빅타이거그룹, 롱아일랜드재즈밴드 등 200여 무대를 올렸다.

부담도 없다. 입장료도 2만원 미만이다. 공연은 금·토요일에 집중된다. 오후 6시에 티케팅, 그리고 8시부터 공연이다.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2881. 010-8033-9353

글·사진 = 이춘호 음식·대중문화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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