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야당,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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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7   |  발행일 2020-08-07 제23면   |  수정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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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언론은 '거여(巨與)의 독주'와 '소야(小野)의 무기력'을 꾸준히 지적한다. '독주'에 대한 반발심과 '무기력'에 대한 동정심이 커지고 있다. 단언컨대 이런 말과 시각이 반년만 지속하면 친문(親文)은 다시 폐족 신세가 된다. '지금 서울시장 선거하면 더불어민주당 진다'는 말이 벌써 파다하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대여당, 이제 모든 것을 책임져라'는 야당의 프레임이 걸작이었다. 공명(孔明)이 울고 갈 책략이었다. 그러면서 자학적이라 할 만큼 모든 사안에 약자 코스프레다. 속수무책 당하는 미래통합당. 자리·법안 다 내주고 '회의장 퇴장'만 반복한다. 거여의 독주에 두 손 두 발 다 든 표정. 다른 속내가 있는 걸까. 난득호도(難得糊塗)의 계(計)? 일부러 바보처럼 행동한다? 필리버스터 등 합법적 저항 수단도 있는데 손을 놓고 있다. 열패감 때문인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선거에서 유리하다"란 말은 무슨 뜻인가. 매를 벌다 보면 저절로 '때'가 온다고 믿는 듯하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 다 주고 스스로 무너지게 함으로써 종국에는 이기는 계략. 만약 그렇다면…, 과연 김종인이다. 소인국 난쟁이들이 술과 기름진 음식으로 거인을 배 불리 먹여 옴짝달싹 못 하게 옭매는 동화 속 한 장면과 흡사하다. 동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구현해 낸 능력이 놀랍다.

거여는 김종인이 쳐놓은 '난쟁이 진(陣)'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갇혔다. 깡말랐던 야당의 항구로 물이 들어오고 있다. 배도 띄우고 있다. 보수진영의 환호가 느껴진다. 총선 후 100일 만에 전세가 뒤집혔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은 참으로 지당하다. 여당은 뭘 잘못 한 걸까.

'악마 삼촌'이 있다. 악마세계의 최고참 '스크루테이프'가 어린 조카 악마에게 편지를 썼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31가지 방법이다. 그중 필살기 하나. '원하는 것을 다 줘라, 그들이 잘 나가게 놔둬라.' 특히 똑똑하고, 열심히, 바르게 산다고 착각하는 인간은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도록 내버려 두라고 한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러면 우리가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파멸하게 될 거야.' 노하우가 많은 삼촌 악마는 한마디 조언을 덧붙였다.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라.' 인간은 고통을 당하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진정 황홀한 세상이다. 이게 신의 축복이 아니라 악마의 덫이라니.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한 단락이다. 총선 압승의 황홀경에 취한 거대여당의 독주에 딱 맞는 비유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반면교사 삼아보자. 파멸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지기 전 여당은 과도한 욕망을 속히 거둬야 한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범진보 190석'이 결코 미다스의 손은 아니다. 모든 안건을 쪽수로 몰아붙여서 어떡하겠다는 건가. '민주당 원하는 시간에, 민주당 원하는 법안만 처리하는, 민주당만 일하는 국회'라는 지적이 신랄하다. 다름 아닌 정의당의 비판이다. 촛불은 이런 폭주를 명령하지 않았다. 상습적인 '다수의 다수결 폭력'도 엄연히 폭력이다. 이런 독주가 꽤 오래갈 것 같다는 게 문제다. 진보 염원이 담긴 국정원법·경찰청법·공수처 관련법 등 쟁점 법안들이 쌓여 있다. 아마 공수처 관련법 처리가 독주의 정점이 될 것이다. 그때가 국론 분열의 정점이기도 할 것이다. 강노지말(强弩之末), 강하게 날아간 화살도 너무 오래 가면 비단결 한 장 뚫지 못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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