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과 이웃맺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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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1  |  수정 2020-08-11 08:00  |  발행일 2020-08-11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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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 공간을 벗어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할 때 작가의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어 큐레이터의 소통능력은 때로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예술이 생활공간으로 확장되거나 일상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개념이라면, 전시를 진행하는 큐레이터는 설득의 기술을 장착해야 한다. 가령 골목 구석구석에 보물찾기 하듯 작품을 놓거나 남의 집 담벼락을 조형물로 장식하기 혹은 가로수에 인공 꽃잎을 달아 봄의 기운을 앞당기는 작품을 실현해야 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먼저 관할 행정기관의 협조를 구해야 하고, 한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에 탐스러운 꽃을 피워야 하는 작업은 녹지과 가로수 담당자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실행 가능하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허락을 구하는 일이 관건이다. 예측 가능한 문제 발생에 대한 대비책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비장한 각오로 길을 나선다. 스무 가구 집집마다 벨을 누르고 주민들에게 전시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사람 대신 목줄 없는 개와 눈이 마주치면 전시는 고사하고 무사귀환만을 바랄 뿐이다. 긴장과 안도의 한숨 속에서 인기척이 없다가 돌아서는 뒤통수에 바스락 소리라도 감지되면 다시 돌아서 벨을 누르는 집착을 내 안에서 발견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알겠다"는 다양한 톤의 허락을 받는다. 물론 거절도 있다. 작가와 동네를 거닐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로 이야기꽃을 피운 늦가을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작품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겨울은 피부 위로 칼바람이 불어대는 생생한 현실이 된다.

예술과 일상을 잇는 작가 최정화의 전시 '생생활활'은 2013년 그 겨울, 대구 중구 대봉동의 어느 마을 일대를 생기있게 변화시켰다. 재개발을 앞둔 오래된 동네에 활력을 주는 대규모 마을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이해와 관할 행정기관의 협조, 그리고 지역 대학생들의 협업으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전시를 진행한 필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번도 왕래가 없던 그 동네를 거의 두 달간 매일 걸었다. 반응은 다양했다. 무엇보다 동네 주민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 많아졌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대구미술관 어미홀에 최정화의 초록색과 빨간색 소쿠리가 쌓아 올린 '카발라'가 전시 중이다. 그 겨울, 언 손을 녹여가며 작품을 만들던 학생들의 곱고 부지런한 손이 요즘 많이 생각난다.
이정민〈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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