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열 방석과 아카시아 향

  • 박진관
  • |
  • 입력 2020-08-25  |  수정 2020-08-25 08:03  |  발행일 2020-08-25 제20면

2020082401000789600031081
이정민〈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대구미술관이 지난 5월 재개관 후 다시 임시 휴관에 돌입했다.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인 터라 마음이 편치 않다. 코로나19를 배경으로 기획된 전시가 다시금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중단되는 운명을 맞았다. 잠시 멈춘 김에 전시 준비 과정에 얽힌 이야기 하나 꺼내본다.

작품을 실현하는데 때론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새로운 연대' 전시에서 열(熱) 작업을 풀어내는 일이 그랬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가시화하는 작업은 무척 매력적인 동시에 기획자에게는 도전이었다. 전기누전이나 화재사고 등 열로 인해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비해야만 비로소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안전성의 확보는 작품실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우선 온도가 관건이었다. 열선의 온도를 높이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안전을 이유로 온도를 떨어트리면 열화상카메라에 감지돼 투사되는 이미지의 색감 정도가 약했다. 그 외에도 열선의 발열시간과 열이 식는 시간, 열선을 감싸고 있는 재질 등 여러 조건을 실험하고 고민해야 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는 작가의 서울 작업실과 북성로를 수차례 오간 후 마침내 기획자의 책상 위에 떨어졌다.

작가와 전기 전문가, 공사 업체 직원과의 미팅을 거듭하며 백방으로 방법을 찾던 어느 날, 팀장님께서 빛바랜 1인용 열 방석을 씩씩하게 들고 오셨다. 순간 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우리가 사용하는 열 장판이나 열 방석이야말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에 나온 물건 아니던가. 팀장님의 빛바랜 붉은 방석이 해체되었다. 실험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한 방석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안전한 열선의 원리는 그렇게 증명되었다. 이제 적당한 굵기의 열선을 찾고 타이머만 해결하면 되었다. 속도가 붙었다.

작가가 원하던 결과물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었고, 관람객의 호응과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그 벽 속에는 작가와 기획자의 고민, 그리고 팀장님의 소중한 방석(아이디어)도 함께 들어있다.

당시 야근 후 미술관 관리동 문을 나서면 밤 공기 속에 진한 아카시아향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긴 하루가 그렇게 한순간 위로를 전해주었다. 시원한 바람과 쏟아지는 듯한 아카시아향이 그 봄날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올겨울, 박 팀장님 의자에 예쁜 열 방석 하나 놓아드려야겠다.
이정민〈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기자 이미지

박진관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