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맛 천차만별 국수들"부산서 국수는 부식 아니라 주식이지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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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28   |  발행일 2020-08-28 제34면   |  수정 2020-08-28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경상도 국수열전 (2)부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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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식 돼지국밥문화와 일본식 소면문화가 절충돼 탄생한 부산 중구 초량동 '평산옥'의 시그니처 메뉴인 돼지사골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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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깡표시장표 열무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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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선창의 선어무침과 부산식 소면문화가 절충된 남포동의 유명 국숫집인 할매회국수의 대표 메뉴. 고명으로 선어로 된 가오리가 몇 점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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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깡통시장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김치국수.

◆전국구 회무침 할매집

1980년대 중순부터 부산으로 몰리는 관광객이 반드시 들리는 무시무시한 내공의 국숫집이 있다. 이제는 전국구 회국숫집으로 성장한 남포동 '김순분 회국수 할매집'이다. 가게 구조가 참 독특하다. 알고보니 1903년 부산 첫 영화관인 행좌(幸座)가 있던 곳이었다. 1990년 작고한 김봉금 할매는 영도에서 회국수를 팔다가 60년대 현재 자리로 옮겨온다. 현재 맏며느리(김순분)가 가게를 잘 지키고 있다. 원래 그 자리에는 정종 잔술집인 '한잔집'이 있었다. 식당 중앙에 스탠드바 바텐 같은 말굽형 식탁이 있었다. 많으면 30명도 앉을 수 있다.

레시피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항상 선어 상태의 '가오리회'를 고명으로 올려준다. 특제 초고추장으로 인해 얼큰해진 입을 위해 양은냄비에 멸치육수를 냉면집 '온육수'처럼 담아준다. 그 육수 맛에 다들 '뻑' 간다. 이밖에 수정식당 내 '창녕식당', 서면 옛 영광도서 앞 '회국수할매집'도 마니아들이 회국수 전문점으로 많이 찾는다.

부평 깡통시장 후문 주방용품거리로 이동을 했다. 간간이 비가 흣뿌린다. 우중충한 바닷바람은 나그네의 허기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 골목 중간에 구두닦이 부스 만한 크기의 잔치국수 전문점 두 곳이 있다. 가장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들렸는데 그 집은 목요일 휴무였다. 대신 바로 옆에서 16년째 국수를 팔고 있는 김타연(69) 사장을 만났다. 사장이 멸치육수를 조금 맛보라 내민다. 맛을 보니 어묵육수의 향기가 스며나왔다. 대구의 멸치육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진하고 농밀하고 육중했다.

선창의 선어집 크기만 하다. 딱 테이블 두 개. 사람이 많이 몰리면 엉덩이를 맞대야 한다. 모두 앉아도 8명. 이 바닥에선 이 집이 '즉석국숫집'으로 알려져 있다. 시그니처 잔치국수 고명으로는 숙주나물과 정구지가 올라간다. 나는 별미랄 수 있는 열무김치국수를 시켰다. 동치미국수를 연상시켰다. 시큼한 국물 맛은 제대로 맛이 농익어 국수보다 계속 국물을 들이켜도록 유혹을 했다. 그 국물에 냉면을 말면 바로 평양냉면이 될 것이다. 매년 11월1일부터 4월말까지는 수제비와 칼국수를 판다. 가게 한편에 생면을 빼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열무김치 옆에 김치국수가 있다. 부평 깡통시장에서 김치국수의 장인으로 불리는 여인, 바로 권순씨. 그는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나름 명사로 발돋움했다. 부평 깡통시장과 맞물린 콧구멍 만한 공간에서 62년째 장사 중. 이북에서 내려온 할머니가 30년간, 이후 권씨가 비법을 전수해 또 30년 장사를 해왔다. 부평 깡통시장 안에 또 다른 포장마차형 김치국수 명가가 있다. 이름 없는 이 국숫집은 노점에 있는 포장마차다. 탁자 2개가 놓여 있는 이 자그마한 가게는 미식가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부산의 맛집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6·25 때 이북 사람이 내려와 무를 채 썬 김치국수를 시작했는데 그 음식을 배운 분에게 주인도 배웠다고 한다. 예전에 그분들이 사용하던 무김치 대신 배추김치를 넣어 오늘에 이르렀다.

남포동 김순분 회국수 할매집
이제는 전국구 맛집으로 성장
30년 됐지만 레시피는 그대로

부평시장 한편의 즉석국숫집
숙주·정구지 올라간 잔치국수
시큼한 맛 열무김치국수 별미

4대째 가업 이어지는 평산옥
부산 돼지국밥과 소면의 조화
수육에 질금장도 색다른 맛

여러 국수공장들 포장종이에
상표없이 '구포국수'만 적어
장수끼리 다투다 한곳만 남아

칼국수·냉면 사이의 부산밀면
영도지역엔 팥칼국수 이름값
연산동 즉석국수골목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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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할매칼국수. 부산은 대구와 달리 홍두깨를 밀가루 반죽을 밀어 썬 칼국수 스타일이 덜 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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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와 삶은 부추가 올려진 부산식 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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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시장의 명물 비빔당면.

◆평산옥

한 세기 역사를 넘긴 전국 최고의 돼지국밥집 중 하나인 부산 동구 초량중로 26의 '평산옥'. 4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돼지고기 수육과 국수다. 부산식 돼지국밥과 일본식 소면문화가 충돌한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돼지수육 삶은 물에 삶은 소면이 들어가면 꼭 서울식 설렁탕을 연상시킨다. 조순현 장인은 3년 전 SBS '생활의 달인'을 통해 육수비법을 최초 공개했다. 김과 감초를 끓인 육수로 고기를 절인 후 삶아주면 돼지고기 본연의 맛과 풍미를 한층 더 살려준단다. 여기에 수육 삶은 육수에 소면이 말아 나오는 국수는 이곳의 또 다른 주메뉴다. 또한 특이하게 수육을 살리기 위해 등장하는 질금장도 여느 쌈장에 길들여진 손님에겐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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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과 한 세기 동고동락해 온 구포국수. 체험관까지 만들면서 새로운 구포국수시대를 일궈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구포역사 뒤안길

구포국수를 알기 전 부산만의 전통을 가진 '삯국수'부터 알아야 한다. 광복 후 부산에서는 구포를 비롯해 서구 아미동·토성동 일대에 국수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 성업했다. 이들은 국수를 자체 생산하기도 했지만 서민들이 배급받은 밀가루로 국수를 뽑아주고 삯을 받는 형식으로 삯국수를 제공해 서민의 생계를 돕기도 했다. 삯은 돈으로 지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정량의 밀가루로 대체 지급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국수가 바로 구포국수다. 그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잉어표, 붕어표, 자라표, 물방울표, 인삼표 등 브랜드는 다르지만 모두 통칭 상표로 구포국수를 앞세운다.

1960~70년대에는 구포 지역에 20여 곳의 구포국수 공장이 밀집해 있었다. 시장 상인 모두가 국수 다발을 묶은 포장종이에 구포국수라고만 인쇄해 내다팔았다. 국수 장수끼리 다툼도 많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수요가 급속히 줄고, 구포국수의 상표분쟁 등으로 현재는 모두 폐업하거나 인근 도시로 떠났다. 구포에서 구포국수를 뽑는 곳은 이제 단 한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구포연합식품'의 인삼표 구포국수다. 구포역 동쪽 길가, 가람로 28번길에 있는 국수공장이다. 아버지 뒤를 이어 3대째 국수를 만들고 있는 곽조길씨가 대표로 있다. 이에 구포국수 관련 제조사와 조리판매 업체들이 '부산구포국수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구포국수'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을 마쳤다. 연이어 국수체험관까지 만들기에 이른다.

종류는 두 가지로, 두께가 얇은 소면은 익는 시간이 짧고 쉽게 불기 때문에 비빔국수나 낙지볶음·골뱅이무침 등 비벼 먹는 요리에 알맞고, 두께가 두꺼워 좀 더 쫄깃한 맛을 내는 중면은 주로 국물에 말아 먹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부산 별별 국수들

부산을 본거지로 한 '신개념 냉면'으로 불리는 쫄면 같은 느낌의 '밀면(밀가루냉면)'. 원조격인 내호밀면과 중흥조인 가야밀면·개금밀면의 범주가 '밀면 삼국지'를 연출한다. 밀면에서 벗어나면 부평 깡통시장을 근거지로 피어났던 '비빔당면'이 제목소리를 낸다. 당면은 원래 비빔냉면의 상징으로 불리는 함흥냉면 스타일에서 빛을 발한다. 아니면 갖은 채소류가 들어간 잡채에 활용되는 정도다.

부산 밀면은 칼국수와 냉면 사이를 가교하는 파생 면요리로 정착한다. 원래 시간이 갈수록 퍼질 수밖에 없는 칼국수의 부족한 식감을 탱글탱글하게 채워주기 위해 기용된 게 당면이다. 밀가루의 허전함을 당면이 식감 증진용으로 활용됐다. 그런데 칼국수와 당면이 35년 전쯤 분리가 되면서 당면은 비빔당면으로 진화를 하게 된다.

또한 영도 지역에 가면 전라도 출신이 많아 그런지 팥칼국수가 유명하다. 그리고 칼국수와 짜장면을 결합한 듯한 짜장칼국수도 강세를 보인다.

연산동에 가면 한때 즉석국수골목이 형성됐다. 예전에는 사장들이 일하기 편하게 오전에 미리 국수를 삶아 대바구니 등에 담아 놓았다. 당연히 면이 눌려 특유의 탱글탱글한 소면의 면발을 만끽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운전기사들이 이 언저리에 많이 몰려들면서 까탈스런 기사의 입맛을 무시할 수 없어 즉석에서 삶은 국수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시장칼국수'는 어디로 가야 맛볼 수 있을까. 영주시장과 서면시장은 40~50년을 훌쩍 넘긴 시장칼국수 집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는 곳이다. 조리법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 잘 반죽한 밀가루를 넓게 펴고 무심한 듯 숭덩숭덩 썰어내는 것이 시장칼국수의 특징이다. 그래서 일반 칼국수보다 면발이 굵고 통통하다.

최원준 시인이 시장칼국수의 연대기에 대해 보충설명을 해준다.

"부산의 국수는 부식이 아니라 하나의 '주식'이다. 부산국수의 출발은 삯국수이고 그게 구포국수를 비롯해 회국수 등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냈다. 부산의 시장칼국수에는 시장별로 지역별로 특화된 칼국수들이 도열해 있다. 기본 칼국수 외에 해물을 듬뿍 넣은 '해물칼국수', 걸쭉한 짜장소스를 얹어 비벼 먹는 온천장과 초량을 중심으로 발달된 '짜장칼국수(일명 칼짜장)', 팥을 진하게 쑨 팥물에 칼국수를 넣고 끓인 '팥칼국수', 칼국수와 당면을 함께 섞어 식감을 최대화한 서면의 '당면칼국수'. 특히 짜장칼국수는 화교들의 부산 정착에 영향을 받아 유독 짜장면을 좋아하던 부산사람들의 식성을 대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될 노포형 할매국숫집 두 곳이 있다. 1959년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에서 문을 연 '대동할매국수', 주동금 할매 뒤를 이어 조카 주징청이 2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리고 부산 강서구 대저1동에 있는 포토밭 무한리필 국수뷔펫집 같은 '대저할매국수'의 손순연 할매. 둘 다 잔치국수 스타일이다. 두 할매는 칼국수를 베이스로 한 대구의 동곡·경주할매국수와 견줄 만하다.

▨도움말=부산 대표식객 최원준 시인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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