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소면에 초고추장 콸콸…부산의 비빔국수를 영접하다

  • 이춘호
  • |
  • 입력 2020-08-28   |  발행일 2020-08-28 제33면   |  수정 2020-08-28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경상도 국수열전 (2)부산국수

2020082801000793100031381
초장이 잘 가미된 부산식 회무침. 부산만의 일상이 잘 매칭돼 있다.
2020082801000793100031383
국제시장과 맞물린 부산의 대표적 야시장으로 유명한 부평깡통시장 내 한 열무김치집에서 잔치국수로 점심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어르신의 무념무상에 가까운 식사장면이 그 어떤 힐링뮤직보다 더 진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대구와 부산. 둘 다 국수에 목을 맨다. 대구가 '풍국면' 하면, 그렇다면 부산은 재빨리 '구포국수'를 내민다. 모두 국수의 고장이지만 국수문화는 상당히 다르다. 대구가 '칼국수'라면 부산은 단연 소면으로 끓여낸 '잔치국수'가 제격이다.

부산 식문화의 근간은 밥보다 국수에서 형성된다. 부산 최고의 돼지국밥집으로 알려진 '평산옥'도 밥 대신 국수를 토렴해 국밥을 말아낸다. 그 국수문화는 구포지역을 축으로 발생한 구포국수의 대표상품인 소·중면이 리더했다. 한때 부산과 한 몸으로 움직였던 제주도도 그 영향 탓인지 중면으로 된 고기국수문화가 꽤 진하게 박혀있다.

두 도시의 국수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대구는 누른국수로 대별되는 칼국수권인데 부산은 칼국수문화가 있지만 대구만큼 강세를 보이지는 못한다. 부산의 잔치국수문화는 일제강점기 거제·통영·남해의 멸치어장, 말린 멸치로 우려낸 다시, 그리고 일본 기술에 힘입어 탄생된 구포국수와의 결합체였다. 예전엔 그렇게 가늘고 고운 소면은 우리 선조들이 만들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막국수·냉면의 전통이 있긴 하지만 소면은 일본에서 건너온 면문화다.

대구에서는 거의 맛볼 수 없는 '비빔국수'. 어쩜 그건 부산 국수문화의 요체다. 비빔국수는 북한 평안북도 함흥의 대표적 냉면류인 '농마면(농마는 '녹말'의 현지어)'처럼 가오리 등 각종 생선회를 고명으로 올린 회국수를 비롯해 김치국수, 열무국수, 비빔당면 등을 포함해 상당히 폭넓은 선택지를 갖고 있다. 언뜻 대구의 잔치음식인 무침회에 소면을 섞은 것 같은 포스다.

비빔국수 성지답게 부평깡통시장을 축으로 '비빔당면'이 태어난다. 1953년 문을 연 원산면옥의 경우 이 고장 비빔냉면의 성지로 정착했는데 이게 비빔당면 형성에 일조한 것 같다. 특이하게 부산에선 대구와 달리 평양냉면(물냉면)이 그렇게 큰 파워를 갖질 못한다. 아쌀하고 칼칼한 성정의 부두 노동자는 슴슴한 물냉면한테는 되레 허갈증을 느낀다. 매콤한 초고추장을 미련없이 들이부어야 직성이 풀린단다.

부산국수 옆엔 늘 생선이 붙어다닌다. 부산은 활어보다 '선어'를 더 선호한다. 특히 하절기 각종 선어는 특유의 숙성된 맛을 유지한다. 선창 좌판 한편 얼음 위에 올려놓고 즉석에서 썰어 빙초산을 섞은 초고추장을 부어 '회무침'을 만들어준다. 대구에서 태어난 '무침회' 스타일이 아니다. 선창의 회무침에는 밥보다 국수가 제격이다. 술 안주로 더 인기다.

2020082801000793100031382
부산의 대표적 식객인 최원준 시인.

대구서 맛보기 힘든 비빔국수, 부산은 이것의 '성지'
대구 무침회에 소면 섞은 듯한 별미 회국수
부두 노동자들은 슴슴한 물냉면보다는
초고추장 미련없이 쏟아부어야 만족
활어보다 숙성된 맛의 '선어' 선호

나도 이번 부산 국수기행 때 관광객에겐 전혀 노출되지 않는 선어거리를 친견할 수 있었다. 이날 부산의 대표 식객 최원준 시인이 안내를 했다. 부산공동어시장, 자갈치시장, 새벽시장과 맞물린 남항 충무동 새벽시장 선창은 부산의 체취가 묻어 있다. 1평이 채 안 되는 좌판형 부스가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다. 50~60년대의 정조가 느껴지는데 꼭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눈물' 버전이다.

새벽시장의 장승이나 마찬가지인 '동환할매집'에 앉아 최 시인과 함께 가오리 회무침을 맛봤다. 포항 출신의 주인 할매는 이 바닥에선 '가오리할매'로 불린다. 이날도 유리로 만들어진 선어 보관대에 가오리, 전어, 병어 3종류가 누워 있었다. 예전에는 이 언저리에 회무침집이 5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딱 한 곳만 남았다. 할매가 가오리를 썰어 초장을 끼엊어 한 접시 안주를 만들어준다. 강파른 일상에 쩐 선창의 일꾼들이 잔소주를 마시고 간다. 회를 먹고 흥건하게 고인 초장채 위에 삶은 소면을 얹어 비벼 주꾸미비빔국수처럼 비벼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회무침의 연장에 자갈치 생선구이백반집이 있다.

그 시절엔 굳이 생선을 사러 갈 필요가 없었다. 어부들이 갓 잡아온 별별 잡어를 선창 아낙네들이 그들의 입맛대로 요리해주었다. 가장 까다로운 양념은 초장이다. 어부마다 자기만의 특제 초장이 있다. 하절기 생선은 탈이 나기 쉽다. 그래서 항상 식초를 곁들여야만 했다. '국수말이선어'는 밥이 입에 맞지 않는 주당 어부들에겐 대낮에 먹는 해장국이었다. 포항물회와 비슷했다.

선창의 회무침 전통은 어부들의 품에서 벗어나 관광객을 향한다. 한 브랜드가 남포동 심장부로 파고든다. 이름하여 '할매 회국수'.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