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름에 대한 단상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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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2  |  수정 2020-09-02 08:03  |  발행일 2020-09-02 제22면

이하미
이하미 〈연출가〉

'문화산책'에 첫 글을 쓰게 되었다. 내 이름을 내놓고 글을 쓰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만 같아 글자마다 겸연쩍고 민망한 마음이 녹아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따져보면 이름이라는 게 '나'라는 유기체를 지칭하는 단어일 뿐인데, 어떻게 이리도 무겁고 부담스러운지. 그래서 이름에 대한 단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이름은 말 그대로 '이름'이다. 무언가를 '이르기 위해' 붙이는 언어적 약속이다. 내가 태어나자 온 가족이 모여 나를 뭐라고 이를지 고민했다. 복잡한 사회적·역사적 구조 속에서 적절한 어감, 의미, 한자 획수, 또 몇 가지 미신까지 정성으로 고려한 결과, 내 이름은 이하미가 되었다.

아마 최초의 이름은 '우'나 '우우'쯤 되지 않았을까. 생존이 우선이던 사회에서 '사냥하자' '모여라' 같은 필수적인 음성 명령들 외에 특정한 구성원을 부르는 특별한 음차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야 '우우는 달려라'와 같은 세부적인 작전이 가능했을 테니까. 그리고 아마 그는 따로 불릴 일이 많은, 유독 강하거나 중요한 이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름이란 고귀한 자들이 가지는 것이었다. 고귀할수록 이름도 많았다. 태명, 아명, 본명…. 심지어 이집트 파라오는 이름이 다섯 개였다. 길기도 했다. 줄줄이 가문과 선조와 영지까지 달았던 유럽 귀족들처럼. 나중엔 이름 자체도 덩달아 고귀해져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예의를 갖추어 상대를 대할 땐 본명이 아니라 '자'나 '호'를 불러야 했고, 왕의 이름은 피휘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성(姓)은 없지만 이름은 있는 개똥이와 돌쇠들이 생기고, 더 시간이 흘러 그것도 없어지자 이젠(적어도 한국에서) 모두 공평한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주어진 본명을 나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

이젠 오히려 이름이 너무 많은 시대다. 한 사람당 하나의 이름만 가져도 77억개의 이름이 있고, 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닉네임까지 합하면 태양계를 한 바퀴 두르고도 남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이름의 난장 속에서 내 진짜 이름 석 자로 오롯이 서보려니 지나치게 생소한 감각이 든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서 결론은 제대로 인사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활자 너머로 대면합니다만 9~10월 수요일마다 만나 뵙겠습니다, 이하미입니다.

이하미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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