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여행별곡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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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4  |  수정 2020-09-14 08:20  |  발행일 2020-09-14 제22면

입춘을 뒤흔들던 코로나19가 입추 때는 좀 가라앉는가 싶더니 다시 경계경보를 울렸다. 온 세상을 위축시키는 현실 앞에서 투정 부릴 때가 아니지만, 여행자들은 이 난국에도 멀리 여행을 갈 수 없어 아쉬워한다.

헤르만 헤세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친구와 재작년엔 일본 오사카에, 작년엔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좌충우돌하면서 보름 동안 리스본, 포르투, 브라가를 돌아다녔고 짬짬이 시를 썼다. 그곳은 자유롭고 아늑하고 정겨웠다. 지난 7월엔 둘이 싼 비행기 표로 섬에 날아가 소박한 일주일을 보냈다. 짧게 다녀온 외국도 더러 있지만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이러다간 자칫 작년에 다녀온 해외여행이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비행기가 활주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번뇌 많은 이 지상을 박차고 날아오를 때 그 짜릿하고 홀가분한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하늘 솥 가득 수제비구름, 울울창창 구름숲, 일파만파 구름파도도 몽환이다. 그래서 목적지 없이 비행만하는 노선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최근에 일본에서 그런 여행 상품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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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수〈시인〉

'여행 가는 척하고 되돌아오거나, 해질녘 혹은 밤하늘을 감상하는 유람 비행'이라고 한다. 바이러스의 눈치를 보며 이렇게라도 여행해야 하는 인간의 삶이 비애스럽지만, 그 이전에 내가 일찍이 바랐듯이 허공을 유람하거나 도시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얻을 것이다. 탈속한 밤의 상공에서 오직 찬란한 불빛만이 눈물처럼 글썽이는 세상을 내려다보노라면 우리가 이 삶에 여행 온 감회도 스쳐 가리라. 사람들은 미래의 여행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다. 그러나 너무 미루다가 지금처럼 뜻밖의 사단을 만나면 그 의미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이럴 땐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지 마라"고 했던 소로(H.D.Thoreau)의 조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내일은 언제나 지금, 바로 오늘이니! 어쨌든 여행은 늘 새롭고 설레는 장르다. 이 인류의 시련이 어서 끝나고 머지 않은 내일에는 못다한 여행이 이루어지기를, 우주여행까지.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는 여행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윤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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