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육식주의자인데요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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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30 07:44  |  수정 2020-09-30 07:50  |  발행일 2020-09-30 제18면

육식을 안 한다는 개념으로 채식주의자라는 단어가 있지만, 그 안에서도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고 한다. 보통 어패류, 알, 유제품이 그 기준이며 붉은 고기는 피하되 어패류, 알, 유제품을 섭취하는 페스코(Pesco)부터 동물성 음식을 완전히 지양하는 비건(Vegan)까지 적게는 4가지 많게는 7가지 정도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주변에 채식주의자가 종종 있긴 했지만, 비건인 M씨를 최근에 처음 알게 됐다. 같이 다녀보니 밥 먹는 게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식당에 가면 직원을 불러 뭐가 들어가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빵이 먹고 싶으면 비건 빵집을 찾아 다녀야 하며, 카페에 가고 싶으면 두유를 쓰는지 또 알아봐야 한다. 그나마 그럴 시간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일할 때는 그럴 수도 없으니, 그와 함께 공연하는 기간 내내 햄을 뺀 김밥과 서브웨이 비건 샌드위치만 먹었다. '난 비건이야'라는 말이 '난 편리함을 포기한 사람이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본인에게도 정말 불편한 것일 텐데 왜 비건을 하고 있는지 물으니, 그는 동물권과 환경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동물에게서 고기, 알, 우유 등 원하는 식품을 얻어내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사육과 도축의 형태 및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적 요소를 반대한다고 했다.

이하미
이하미〈연출가〉

잠깐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식사했단 기분이 들지 않는 사람으로, 돼지국밥과 수육을 사랑하고, 치킨으로 위로받으며, 소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다. 고깃집에서 쌈도 안 싸 먹는다. 채식주의는 단언컨대 내 삶에서 가장 먼 거리의 사상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자신과 상관없는 어느 닭과 돼지, 소와 물고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서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동물들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환경 파괴적 요소들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편리를 거부한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대체 내가 평생 목격할 일도 없는 개체들에 연대감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어떤 감각일까. 효율이 곧 돈인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서 불편하기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결단력과 유지력은 얼마나 큰 에너지일까.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플라스틱을 안 써볼까 하다가 6시간 만에 실패한 나는, 육고기를 이틀 참고 실패한 나는, 오늘도 그 감각이 궁금해 또 실패해볼 예정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온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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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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