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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에이미 배럿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30년 가까이 진보적 여성주의의 상징이었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자로 정반대의 후보자가 지명되면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는 중차대한 변수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잠시 대중의 시선이 떠났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 상원에서 대법관 인준을 위한 청문 절차가 시작되면 곧 불꽃 튀는 세계관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미디어들은 배럿 판사를 일곱 남매의 맏딸, 일곱 아이의 엄마, 낙태를 반대하고, 반이민정책을 지지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법학 교수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나하나는 2001년 9·11사태 이후 계속된 미국 사회의 보수화가 앞으로 어떠한 구도로 진행될 것인지에 관하여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배럿 후보자가 최근 한 세대 동안 씨가 마른 비(非)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이라는 점이다. 1972년의 낙태 합법화 판결 이후 대법관 인준과정이 이른바 '문화전쟁'의 예선전으로 변모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격렬한 인준투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법관 후보자들을 찾고자 했고, 그 결과 현재처럼 예일 또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연방항소법원의 판사들로 연방대법원이 채워졌다. 이 점에서 중서부의 아이리시 가톨릭 로스쿨 출신인 배럿 후보자는 법조 기득권 집단의 바깥을 표상하는 인적 교체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쇠락한 공장지대인 중서부의 경합주들에서 동부 해안의 기득권층과 대결 구도를 만들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과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다음으론 배럿 후보자가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가톨릭 종교의 강화된 위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사회에서 가톨릭은 단연 주류 종교의 위상을 차지했다. 굳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히스패닉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낙태나 사형과 같은 이슈들에 대한 보수적 일관성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가톨릭 종교의 정치적 위상을 꾸준히 높였다. 사실 배럿 후보자가 대법관에 임명될 경우, 미국 연방대법원에는 가톨릭 배경을 가진 6~7명의 대법관이 일하게 된다. 불과 한 세대 이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는 배럿 후보자의 인준을 둘러싼 세계관 논쟁에서 보수적 여성주의가 세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진보적 여성주의는 양성평등과 여권 신장 등에 관해서 커다란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고, 이는 흥미롭게도 가족과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 여성주의의 흐름에 제도적 토대와 정치적 동기를 함께 제공했다. 12년 전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잠시 불붙였다가 조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의 TV 토론 이후 자질 문제 등으로 수그러들었던 이 흐름은 배럿 후보자의 인준과정에서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정치분석가들의 지적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는 배럿 후보자와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의 대결 구도에서 자질 논란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에이미 배럿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임명될 경우 미국 연방대법원은 확실한 보수성향의 대법관이 9명 중 5~6명에 이르러 판결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아무래도 미국 사회의 보수화가 한국 사회와 동아시아에 미칠 영향에 관하여 깊은 토론이 필요할 듯싶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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