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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윤수〈시인〉 |
시가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난해한 시가 어렵고, 시 쓰기가 어렵다는 뜻이리라. 난해한 시는 안 봐도 되고, 시 쓰기보다 어려운 건 삶이다. "재능이 없어도 인생에 실패하면 시를 쓰게 된다고 했다"는 시구가 있다. 실패는 시 창작의 자산이 되지만 실패하지 않아도 시를 쓸 수 있다. 그림은 그리면 되고 시는 쓰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는 건 잘 그리고 잘 쓰고 싶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시 쓰기는 필기구와 종이만 있으면 된다.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고 쓰는 사람의 나이에 한계가 없으며 화장실에 앉아서도, 죽는 순간까지 침상에 누워서도 가능하다. 만약 손 장애가 있다면 구두(口頭)로 전달하면 된다. 시는 활자화된 것이 완성품이고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제품이다. 시집은 작고 가벼워서 운반과 소지도 편리하다. 시는 애초에 구차한 것을 배제한다.
흔히 시는 돈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매매나 물적 교환가치가 없다는 뜻인데 시는 그것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적다. 그런데 노벨상 중에 예술상은 노벨문학상뿐이다. 상금은 환율로 계산하므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여성 시인은 12억6천만원을 받는다. 노벨문학상을 주는 가치는 그 보편적이고 미약한 도구로, 최소 면적에 홀로 앉아서 창대한 작품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란 무엇이며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의는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 점을 아무리 유식하고 고상하게 표현한다 해도 그것이 시의 위에 놓일 수는 없다. 시는 무한하고 자유롭다. 시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창의적인 세계다. 다만 시도 사람의 일이므로 삶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시인은 시시하거나 시시하지 않은 존재라고 나 자신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시 쓰기는 세상의 정면을 응시하며, 삶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뒷모습을 자주 생각하는 과정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위험하다"고 했다. 슬픔의 고삐를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시가 좋은 시다. 증원이나 감축에 투쟁할 것 없이 시인은 많을수록 좋다. 시를 안 읽는 시대라는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전 국민, 전 인류가 시 쓰는 시대를 만들고 자신이 쓴 시를 자신이 보면 된다. 모두 그렇게 사노라면 세상도 덜 분탕(焚蕩)하리라. 이것이 시의 위대한 힘인데 더 많은 사람이 쓰기를 행하지 않을 뿐이다.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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