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그립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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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0  |  수정 2020-10-20 07:57  |  발행일 2020-10-20 제15면

백수범
백수범 〈변호사〉

평소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힘든 요즘, 그리운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아내와 함께 나들이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던 주말이 그립다. 가족과 친구와 선후배와 함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 그립다. 카페에 둘러 앉아 편하게 얘기하던 시간이 그립다. 변호사회·영화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보고 뒤풀이하던 때가 그립다.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한 달 동안 또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하면서 회식하던 월말이 그립다. 동네 이웃과 돌아가면서 한번씩 서로 집을 방문해 같이 먹던 저녁이 그립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와 그녀의 얼굴이 그립다. 맨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그립다. 배달 온 치킨을 맨얼굴로 나가 받던 때가 그립다. 투명 칸막이가 없던 라디오 부스가 그립다. 어디 가면 이마에 체온을 재지 않던 때가 그립다. 건물 입구 열감지 카메라에 알록달록 내 모습이 비치지 않던 때가 그립다. 다녀간다고 출입자명부에 이름을 쓰지 않던 때가 그립다. 코로나특보 아닌 소소한 저녁뉴스가 그립다. 화상회의가 낯설던 때가 그립다.

밀양 얼음골 호박소 아래 계곡에서 물놀이 했던 작년 여름이 그립다. 제주 서귀포 황우지해안 선녀탕에 사람이 많아지기 전이 그립다. 한여름에도 발이 시린 돈내코 원앙폭포가 그립다. 자주 가던 집 근처 낡은 목욕탕이 그립다. 끝까지 가기도 전에 숨차던 수영장이 그립다. 멀리 재판이나 강연을 가면 하루 묵어오던 낯선 곳들이 그립다.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게 힘들어서 좋아하지 않던 해외여행도 갑자기 그립다.

그리운 게 이렇게 많은데 코로나가 물러가면 무엇부터 할까.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겠지. 아내와 함께 식당부터 가고 싶다.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전에 하던 것처럼 아내가 했던 얘기 또 한다고 핀잔을 좀 주더라도 '들어봐'하면서 즐겁게 같이 밥을 먹고 싶다. 그리고는 자주 가던 낡은 목욕탕에 가서 숨 크게 쉬며 온탕냉탕을 왔다갔다 하고 싶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들. 나머지는 하나씩 차근차근 해야겠지.

코로나 재확산으로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가 야간통행을 금지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리운 것들을 다시 마주할 때를 간절히 기다리며, 내년에는 마음껏 마주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그리운 것들을 적어라도 본다. 다시 마주할 때까지 식당도, 목욕탕도, 카페도, 우리 모두 잘 견디기를 빈다.

백수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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