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고독과 사이좋게 지내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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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6  |  수정 2020-10-26 11:34  |  발행일 2020-10-26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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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수〈시인〉

마스크 시대 훨씬 이전에도 스스로 자신을 격리하고 봉쇄한 이들이 있었다. 그때는 질병이 유행하지 않았기에 오로지 삶의 한 방식으로 고립을 택하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고독의 모범생이었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탁월한 작품을 썼고, 자신의 아내와 친구가 연모했으므로 기꺼이 아내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나이 육십을 넘어서면서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세상을 차단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고, 새로운 지인을 만들지 않았으며, 방문객을 엄격히 제한했다. "문학자는 붕당을 만들 필요가 없다. 될 수 있는 한 고립해 있는 쪽이 좋다"는 신념으로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괴벽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서른두 살에 갑자기 은퇴한다. 그는 대중을 기피했고 "세상 속에서, 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곳의 진실은 바로 격리이다"라는 말을 차용했다. 그는 고독을 낡고 닳도록 사용했다. 꿈틀거리고 흥얼대는 그의 독특한 연주 방식은 후일에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에 오버랩 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중년에 접어들어 조각에 심취했다. 그녀는 상처 많은 가족사와 너무나 작은 자신의 키에 한이 맺힌 메타포로 집채만 한 거미 작품을 많이 남겼다. 팔순 말에 비로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성취했고, 그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십년 가까이 출입을 자제하며 왕성하게 작업했다.

이 순간에도 외따로 창작의 밤낮을 지새우는 예술가들이 많을 것이다. 고독은 해롭고 불명예스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악명보다 예찬이 높아서 분명 가치가 큰 요소이다. 고독은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짊어지고 있으며 존재의 그림자와 같다. 고독이라는 짐승을 잘 다스리면 주인을 물지 않고 충실히 섬긴다.

고독의 대가 소로(H.D.Thoreau)는 "우리는 방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고 했다. 아무리 SNS를 하고 휴대폰을 안고 살아도 본질적인 고독은 삭제되지 않는다. 치가 떨리는 고독일지라도 무정한 세상보다 내 안의 고독이 소중하고 좋은 벗이다. 삼성전자도 애플도 고독을 만들 수는 없다. 어느 시대나 고독이 최첨단이었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사윤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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