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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호〈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장〉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중략)~"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타나는 고향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살았던 고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향의 모습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공감이 자연스러운 것은 고향은 안전하고, 안전하기에 편하고, 편한 곳에서 보낸 시간이 따뜻한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도 이런 의미가 통한다.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어 창밖을 보면 뛰어노는 모습과 소리가 가득한 곳. 그러나 나는 최근까지 한동안 썰렁한 놀이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서늘해져 아이들이 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요즘, '계절의 역행'처럼 오히려 아이들은 밖에서 더 많이 뛰어놀고 있다. 얼마나 그리던 풍경인데 날씨가 추워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게 익숙하지 않다.
나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내년에는 다시 원래의 시간표로 돌아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우선, 바이러스라는 반생물의 생존 목적이 숙주를 헤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와 공존하려면 독성을 줄여가야 한다. 100여 년 전 스페인 독감의 경우 두세 달의 폐쇄 정책 이후 11월에 최악의 재확산을 경험한 후 다음 해에 놀랄 정도로 희생자가 줄어들었다.
둘째는 백신이 곧 생산된다는 것이다. 백신의 불완전성을 걱정하는데 유의미한 효과만 있어도 괜찮다.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효재생산지수'를 낮춰 줄 것이다. 이 지수가 0.4라면 약 177일, 0.5라면 약 200일 만에 바이러스가 소멸될 것이라는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논문은 최근에 본 가장 희망적인 글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서로 만나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언택트가 일상이 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와 친했던 적이 있었는가.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인류공동체의 관심은 끊임없이 만나 대화하고 사랑하고 타협하는 것이었다. 약간의 완급은 있을 수 있지만 따뜻한 고향과 터전은 머지않아 꼭 돌아올 것이다.
이원호〈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장〉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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