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치욕의 역사에서도 배운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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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0  |  수정 2020-11-10 07:39  |  발행일 2020-11-10 제15면

이원호
이원호〈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장〉

1995년 8월15일 김영삼정부에 의해 조선총독부가 폭파로 철거됐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이름 아래 진행된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이후 '일제 쇠말뚝' 같이 사실이 아니라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은 사업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갖고 일제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빈자리 일부는 상징물로 대체되기도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최근 한반도와 아시아 침략에 앞장선 일본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 발견됐다. 한국은행 본관의 머릿돌 글씨인 '正礎'가 이토의 글씨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동안 서명자에 이토란 이름이 지워지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였던 '융희(隆熙)'가 씌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제기됐는데, 이번에 문화재청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 초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추세라면 한국은행이 문화재청에 문화재 형상 변경 허가를 얻어 위 머리글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은행이라는 상징적인 건물이라 초석을 제거하자는 의견이 많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당연한 주장이긴 하지만, 나는 위 초석이 현 상태로 존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 명토 박는다. 별도의 조건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연유로 어떻게 이 초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건지 반드시 명기해야 할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글이나 상징물로도 역사를 배우지만 존치하는 증거로부터도 역사를 배우기 때문이다. 사료는 역사의 증거다. 그것은 가치 중립적으로 존재하고 사관은 주장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형성된다.

사관은 내용이 풍부하고 주장하는 바가 뚜렷한 반면, 주장하고 전하는 사람에 따라 어조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초석이 치욕의 사료임이 분명한데, 이것을 보고 역사를 잘못 이야기한다면 이 또한 잘못된 사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춘추시대 월왕이었던 구천은 통나무에서 잠을 자고(臥薪), 쓴 쓸개를 맛보면서(嘗膽) 오나라에 대한 자신의 복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역사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치욕의 증거만 한 교구재는 없는 법이다.
이원호〈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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