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시간의 풍요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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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1  |  수정 2020-11-11 07:50  |  발행일 2020-11-11 제27면

김하나
김하나〈극단 난연 대표〉

'시간에 대한 느긋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풍요의 한 형태다.'(보니 프리드먼)

'쉬지만 뭔가 생산적인 게 필요한데….'

친한 동생이 보낸 문자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나 또한 날씨 탓이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던 날이라, 내 시간에서 점점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불도 켜지 않은 채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하루를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게 된다는 한심함과 나태함이 몰려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동생과 함께 압박에 쫓기듯 나왔다. 의미 없이, 이유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 노트북을 챙겨서 카페로 왔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쉬면 안 된다는 죄책감, 실천이라는 부담감이 나를 억눌렀다.

얼마 전까지 일에 매달려왔던 나에게 누군가가 즐기면서 쉬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대체 즐기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정말 쉬는 건 어떤 것일까?

폭식이나 과식 또는 과음 등을 했을 때 종종 '몸도 쉬어 줘야지'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정신과 몸에 좋은 걸 적당히 해 주는 것이 쉬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잘 모른다. 어떤 게 좋은 건지, 어떻게 쉬는 것인지. 이제는 제대로 쉬는 것도 압박처럼 느껴진다.

쉬는 것도 실천이 되고 제대로 쉬는 나의 모습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될 것 같은 일처럼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밀려나는 것 같고, 집에 온종일 누워 있으면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내 삶의 결핍의 결과가 아닐까. 일주일을 일에, 경제 행위에, 인간관계에 매달려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결국 우린 가득 찬 행위 안에서도 결핍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즐겁게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 결국 그 즐거움이 결핍되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건 아닐까? 쉬는 것도 일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우리들. 풍요란 통장의 돈이 아니라, 명성의 크기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여유가 아닐까? 언젠가 나도 그 풍요 속에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길 바라본다.
김하나〈극단 난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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