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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진〈미술평론가〉 |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 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신전이다. 돌이나 사물들은 생명 없는 것들이라 생각하지만, 그들도 알고 보면 내인(內因)과 외연(外緣)의 인타라망(Indra·因陀羅網) 그물에 걸려 서로를 반영하는 기(氣)의 집적물이라는 점에서 생명체와 인연관계를 이루는 존재들이다.
이들 모두가 신전이라는 '한생각'을 하다 보니 세상은 볼 것도 들을 것도 느낄 것도 너무나 많고 풍성하다. 물론 모든 것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소리들의 저변에 깔린 '압도적인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 속 신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과 사물들 속에 편재하여 그 영성을 쉼 없이 전언하고 있다. 호칭이 하느님이면 어떻고 또 부처님이면 어떻고 브라만과 알라신이면 어떤가. 각 종교의 도그마에 갇혀 배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지니는 더 큰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유출설(流出說)에서 태양의 빛에 비유하여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설파하였다. 물론 인간의 이성(nous)이 그 빛을 제일 많이 분유(分有)하고 있다는 위계를 제시하고는 있지만, 인간과 동·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진리의 빛은 흘러넘쳐 만물에 그 신성이 스며들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동양에서는 흐르는 물에 덕성을 비유하는 유가의 '자연의 인간화'철학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 인간이 자연이 되기를 설파했던 도가의 '인간의 자연화' 철학도 있다.
이 같은 사상은 예술사유에도 영향을 주어 스타오(石濤) 같은 화가는 물화(物化)의 화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대나무를 그리려면 네가 대나무가 되고, 산을 그리려면 네가 산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듯이,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 이입하여 그린다는 감정이입설과는 다른 문맥이다. 화가가 그 자신은 잃어버린 경지에서 대상의 물(物)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니, 바로 대상이 품고 있는 신(神)에 들어가야 제대로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동양화론에서 말하는 전신(傳神)과 사의(寫意)도 알고 보면 이 같은 신의 모심이다. 세상 만물에 깃들어 있는 영(靈)과 신의 모심과 경배가 예술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미진〈미술평론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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