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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진 〈미술평론가〉 |
산책길에 뒷산의 잘린 나무를 구해 무엇인가 만들다가 문득 공예의 가치에 대하여 돌아본다.
공예는 어떠한 종류의 예술보다도 가장 앞서 인류 초창기부터 존속해왔다. 그것은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의 심미감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미에 대한 갈망과 실용적인 편익을 함께 충족시켜주는 합목적성을 지닌다. 그만큼 공예는 시대정신과 민족의 정서나 미의식을 가장 첨예하게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후기산업사회인 오늘날에는 완전히 기계를 도외시하고 공예품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의 공정을 회복하려는 수공예의 부활이나 일품공예와 오브제공예 등의 방향성은 인간에게 있어 '손을 통한 사유'가 현대에 오히려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인류에게 있어 손은 이성만큼이나 중요하다. 인간은 머리로만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도 사유하기 때문이다. 온갖 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었던 손의 역사 속에 바로 공예의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인간의 정서와 마음, 육체가 하나로 합쳐져서 만들어내는 매우 포괄적인 전일체(全一體)의 작업이 공예이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인간정신의 물질적인 형태로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공예는 '디자이너'와 제작자가 일체가 되는 창조이며, 공예가의 개성이 처음부터 최종적인 사용에 이르기까지 제작품에 연좌관계(連坐關係)되어 있다. 더욱이 공예는 인간성에 대한 보다 깊은 갈망을 대변하면서도, 그의 기능은 그 사용 목적 때문에 사회화되고 전체 공동사회를 통하여 분배된다.
오늘날 과학이 4차원의 세계를, 그리고 기계공학이 보다 광활한 천체를 개발할지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개인들은 마치 1차원 같은 세계 속으로 압축 당하고, 또한 정신적으로 파편화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조건 속에서 현대인이 행사하는 책임은 근소하고 결정력은 오히려 반감되고 있다.
다만 인간적인 것의 작은 부분만이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 반면에 공예는 사람의 마음과 물질을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특정한 기능에 연관시키기 때문에 한 개인 전체를 관여시킨다.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에 공예가 지니는 관계와 가치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장미진 〈미술평론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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