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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량 '월야산수도'. 종이에 수묵담채, 49.2×81.9㎝, 174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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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희 (화가) |
12월의 낙엽이 반들거린다.
사람의 발길이 만든 흔적이다. 나무를 호위하던 잎이 떨어져 새 잎을 틔울 또 한 해를 예비한다. 낙엽이 깔린 산길을 걸으며 가지가 드러난 나무를 본다.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1696~1763)이 그린 '월야산수도'의 나무처럼 모두 말이 없다. 깊은 산 속에 나목만 덩그러니 달빛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묵묵히 살아남은 나무들이 달빛으로 밤을 나고 있다.
친가와 외가에 유명한 화원들이 포진한 화원 가문에서 태어난 김두량은 어릴 적부터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20대 초에 도화서 화원이 된 것은 가업을 잇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재 윤두서에게 그림을 배웠고, 개를 특히 잘 그렸다. 영조가 그에게 종신토록 급녹(給錄)을 주라"고 한 기록이 문장가 이가환(李家煥·1742~1801)의 '동패락송독(東稗洛誦讀)'에 전한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김두량의 인물화를 보고 "옷 주름이 원숙하고 먹 쓰는 법이 족히 명수라고 칭할 만하다"고 평했다. 김두량은 영조대에 여러 화사에 참여해 영조의 사랑을 받았다. 영조가 김두량에게 '남리'라는 호를 내릴 만큼 솜씨가 발군이었다. 그의 아들이 정조에게 발탁된 것도 화원 가문의 명성에 빛을 더하는 일이었다.
조선 후기는 서양화법이 화단에 선보이는 등 새로운 시대였다. 사실화, 진경산수화, 풍속화 등 조선의 산천과 풍속을 그리는 화풍으로 화단의 변화가 뚜렷했다. 화원화가로 전통화법을 고수한 김두량은 대담하게 서양화풍을 가미한 작품도 전한다. 개를 사실적으로 포착한 그림은 회화사의 전환기에 새로운 화풍을 시도한 것이다. 앞선 시대정신을 받아들인 것은 실학자인 윤두서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월야산수도'는 고목과 만월의 이중주가 고고(孤高)한 야경이다. 나무는 한 해 동안 싹을 틔우고, 무성한 이파리를 뽐내던 여름을 보냈다. 알록달록하던 단풍도 마침내 고개를 떨궈 나무 줄기와 가지만 남았다. 이제 나무는 추위와 맞서며 긴 침묵의 시간에 들어간다. 선방에 든 수행자처럼 여러 형태의 나무들이 모여서 묵언수행 중이다. 고목 아래로 세찬 물줄기가 장쾌하고, 계곡 너머 안개에 휩싸인 숲이 아련하다.
화폭의 왼쪽 앞에는 키 낮은 나무가 세월의 거친 흔적을 새긴 채 휘어져 있다. 뒤쪽의 나무는 곧게 뻗어 올랐다. 나뭇가지는 게의 발톱처럼 거칠고 짧게 그렸다. 언덕은 부드러운 작은 점을 찍어 강렬한 나무와 대비를 이룬다. 직선으로 붓질을 한 물줄기가 힘차게 흐른다. 옅은 먹으로 언덕을 처리한 오른쪽 숲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운치를 더하고, 둥글게 번지는 달빛이 나무들을 감싼다. 화폭 왼쪽 위에 '갑자중추김두량사(甲子仲秋金斗樑寫)'라는 글이 있다. 영조 재위 20년인 1744년 음력 8월에 이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나이 49세 때다.
왜 하필이면 8월에 둥근 달을 보며 겨울의 나무를 그렸을까. 김두량은 하늘의 뜻을 아는 50세를 바라보며 세상의 이치에 문리가 터진 것으로 보인다.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이고 싱싱한 잎은 때가 되면 시들어 떨어진다. 그 무엇도 항상 그대로인 것은 없다. 그것을 알기에 8월의 만월과 잎이 진 12월의 나목을 한 화면에 조합해서 그린 것은 아닐까. 그는 화원 화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산수화, 인물화, 영모 등 여러 화목을 잘 그렸으며, 신선도에 뛰어나 만월 같은 호시절을 보냈다.
나무는 여름에는 짙푸른 잎으로 창창한 기운을 발산하고, 가을에는 비로소 자신을 비워 하늘과 산의 능선을 선사한다. 코로나19가 온통 세상을 뒤흔든 2020년이 기울어간다. 나무에게 에어컨 바람 같은 서늘한 잎이 있다면, 우리에겐 '월야산수도'의 온열기 같은 위로의 달빛이 있다. 마스크를 쓴 채 달빛을 호흡한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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