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계의 문지기, 게이트키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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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21  |  수정 2020-12-21 09:33  |  발행일 2020-12-21 제21면

장미진
장미진〈미술평론가〉

'예술'은 철학적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열린 개념이다. 그만큼 그 시대와 제도 속에서 예술로 인정되면 예술이 되는 제도적인 용어이다. 이제는 산업용 변기도 자연석도 일상의 오물들도 소음과 침묵도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그리고 사회적·제도적 용인에 따라 이미 현대예술의 반열에 올라 있다. 문제는 앞 뒤 어떤 문맥에서 그같은 예술언어들이 발생하고 부침하는가 하는 그 정신적 필연성을 읽어내야 할 때이다.

어느 유명한 역사 학자는 "역사란 없다. 다만 사건과 사실들만 있을 뿐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만들어간다"고 했다. 예술사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예술품들이 누적되어 있을 뿐 예술사는 예술사가들과 작품해석자들이 만들어간다. 무엇이 예술사에 기록될 것인가는 공시적·통시적 좌표 속에서 시대와 제도가 공인한 작품들 뿐이다. 때로는 변화하는 시대의 해석 방향에 따라 작품들은 르네상스를 맞기도 하고 사장되기도 한다. 그만큼 예술은 개인의 창조물이면서도 사회적 산물이다.

오늘날 예술의 생산접근법은 게이트 키퍼와 보상체계, 시장구조, 예술가의 경력 네 영역으로 작동된다. 예술품들과 예술가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체계를 통제하는 것이 게이트 키퍼다. 미술쪽을 본다면, 대부분의 미술품들은 잠재적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기 이전 우선 게이트 키퍼를 거친다. 예술가를 걸러내는 사람이나 조직체계, 대리소비자로서의 비평가, 미술관이나 갤러리, 후원 기관이나 기업, 옥션을 비롯한 유통영리사업체들의 네트워크 등이 모두 문지기에 해당한다. 그러고보면 순수예술창작인들도 소통의 그물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12일 KBS '시사기획 창'에 집중 방영된 이우환이라는 거장과 위작논란을 보면서 당혹감을 떨칠 수 없었다. 모두가 돈으로 환산되는 거래의 사기행각이 예술을 잠식한다. 스탠리 카벨은 1965년 오늘날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상황은 "사기의 가능성이 산재하고 상존한다"고 피력한 바 있다.

마피아조직 같은 예술계의 체계와 그물망 속에서 진정 '예술은 무엇이고 또 예술가는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예술'의 부정의론(不定義論)과 '예술작품이 없는 예술' 시대라 하더라도, 창작과 표현을 통해 진부한 일상의 삶을 고양시키고 체험을 확충하며, 또다른 세계의 확장을 통해 인간성에 깊은 위안을 주는 행위의 흔적들이 예술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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