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대통령의 정치적 영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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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0-12-30  |  발행일 2020-12-30 제면
盧 '대중정치인 영혼'과 달리

文은 '법률지식인 영혼' 느낌

당파 넘어 적법성 택했지만

중립권력 檢·법원 당파성 등

정치적 불리한 결과 초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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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임기 중반의 총선을 통해 국회 과반의석을 얻은 점이나, 그 이후 기대만큼 개혁 속도를 높이지 못한 점은 비슷하지만, 정국을 대하고 이끌어가는 근본 방향에서 두 대통령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임기 후반 노 대통령은 지지세력의 실망과 분열을 감수하고 한국 사회의 현실적 기득권층과 다수파 정치연합을 결성하고자 애썼다. 이라크 파병, 대연정 추진, 한미FTA 타결, 원포인트 헌법개정 제안 등의 의제들은 모두 이를 선제적으로 성취하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당파성을 기반 삼아 다수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대중정치인의 영혼'을 가졌다. 그러나 보수 야당과 언론은 이러한 의제들과 그로 인한 정치적 성과를 공유하면서도, 노 대통령의 기획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거부했으며, 퇴임 이후 발생한 정치적 파국에 관해서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고, 대선에 두 번 출마했으며, 국회의원과 제1야당 대표로서 전국 선거를 이끌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중정치인의 영혼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과의 갈등이 불거진 이후 문 대통령의 대응은 그와는 궤를 달리하는 정치적 영혼의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법률지식인의 영혼'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고비마다 당파성을 넘어 적법절차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는 선택을 이어왔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권 행사에 대한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검찰의 권한과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에 관해 일관된 입장을 지켰고, 검찰개혁을 앞세운 법무부 장관의 각종 조치 역시 법률이 보장하는 장관의 권한 행사를 줄곧 존중했다. 최근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처분과 관련하여 아마도 법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법원의 직무복귀 결정을 거듭 수용하면서 인사권자로서 국민 앞에 사과하기도 했다. 개발독재의 유산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영 속에서 문 대통령의 이 낯선 스타일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결과를 낳고 있다. 쾌도난마의 리더십을 기대하던 열혈 지지층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고, 여러 색깔의 반대파들은 반문연대를 기치로 집결 중이다. 그 와중에 일반 시민들은 늦어지는 개혁과 코로나19의 피로감을 탓하며 무당층으로 이탈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문 대통령의 이 낯선 정치적 영혼에 부딪혀 헌정사상 최초의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광복 이후 지금껏 중립적 권력으로 자처해왔던 검찰, 언론, 법원 등이 그동안 짐짓 은폐해 왔던 나름의 당파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SNS와 유튜브에 넘쳐나는 검찰당, 언론당, 법원당과 같은 신조어들은 이러한 현상의 상징들이다. 중립적 권력의 중립성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중립성을 의심받는 중립적 권력은 대중의 성원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치적 유혹과 위협을 동시에 경험할 수밖에 없다. 유혹이란 그 중립적 권력을 바탕으로 당파적 권력투쟁에 뛰어들라는 초대가 시작되는 것이고, 위협이란 바로 그다음에 자신의 당파성을 탄핵할 또 다른 중립적 권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스스로 중립적 권력을 자처하며 군사쿠데타를 결행한 뒤 대중의 성원을 받아 민간 권력을 차지했던 과거의 군 출신 정치인들은 다른 무엇보다 중립적 권력으로서의 군을 두려워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와 유사한 지점에 접근하면서 정치적 유혹과 위협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또 한 명의 법률가-정치인이 존재한다. 중립적 권력을 차지한 채로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를 기록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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