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신축년, '사이'의 미덕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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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06  |  수정 2021-01-06 08:08  |  발행일 2021-01-06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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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극작가〉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의 대본을 '희곡'이라 한다. 물론 레제드라마(Lesedrama)라 하여 '읽는 희곡'을 지칭하는 말도 있다. 여하튼 희곡을 읽다 보면 '사이'라는 용어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사이'라는 단어가 낯선 윗세대에게는 '포즈(Pause)'라는 용어가 익숙할지도 모른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은 외래어로 표기되는 연극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했고, 2003년 1월2일 이를 고시했다. 이후부터 포즈는 '사이' 내지 '휴지(休止)'라는 우리말 순화 용어로 불리게 됐다.

희곡에서 '사이'는 대사와 대사 '사이' 일시적인 멈춤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를 통해 의미를 강조할 수도 있고, 긴장감을 극대화할 수도 있고, 내뱉는 말속에 놓치고 있던 상대의 감정을 바라볼 수도 있다.

이 '사이'라는 용어가 2021 신축년 새삼 떠오르는 건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사이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는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 또는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까지의 거리나 공간'이다. 우리의 '거리두기' 핵심은 바로 이 거리나 공간에 '공백'을 줘 감염병의 급격한 확산을 막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살기 위해 살아 있는 존재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게.

예년이었다면 우리는 새해 새달을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벗을 만나는 시간으로, 은사님을 찾아뵙는 시간으로, 기업에서는 커다란 공간에 모여 시무식을 하며 '으으'하는 시간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거리두기'를 희곡의 '사이'로 바꿔보자. 말이나 행동보다 멈추고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나를 충분히 아끼고 있었는지. 나의 말과 행동에는 지나침이 없었는지. 바다도 산도 하물며 번잡한 도시의 야경도 떨어져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말의 반복 같지만 우직한 소의 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대신 그 사이를 '따뜻한 온기'로 채워 둔다면, 마스크 벗고 침 튀기며 바짝 붙어 이야기할 수 있는 날, 우린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감염병이 불러온 꽤 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는 게 바빠 놓치고 있던 사람과 사람 사이 '접촉'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길. 하지만 그 시간이 더는 길지 않길 바라본다.

김민수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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