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추사의 마지막 작품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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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6   |  발행일 2021-01-26 제15면   |  수정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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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변호사〉

추사체나 세한도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추사가 1866년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쯤 쓴 마지막 작품은 어떤 것일까. 몇 년 전 신문에서 추사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에 대한 기사를 본 적 있는데 그 작품 내용은 이렇다.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라는 뜻이다.

추사가 어떤 인물인가. 조선 순조 때 이른바 세도정치 시절에 명문가인 경주김씨 집안 출신이고, 실학에서도 금석문과 고증학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으며, 당시 중국 청대 연경학계의 옹방깡·완원과도 교류했다. 그런데 1840년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대사헌 김홍근의 상소로 관직이 삭탈되고 심한 심문을 받은 후 제주도 위리안치 형을 받아서 유배 길에 오르는 고난을 겪는다. 그렇지만 유배 길에 해남 대둔사에 들렀다가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전의 '大雄寶殿(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보고 그 자리에서 '대웅보전'이라는 글씨를 써 줄 정도로 여유를 가진 분이었다. 물론 9년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다시 달라고 한다.(유홍준 교수는 '완당평전'에서 이 전설에 대해서 고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새로 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당대 최고의 학식을 가졌고, 그림과 글씨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가 죽기 전에 산해진미와 고관대작 모임 대신에 나물 반찬과 가족 모임을 최고로 꼽았다니…. 그 기사에는 상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렇지만 추사가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천하에 자랑할 만한 학식을 가졌지만 제주도 유배라는 암울한 시기를 거치고 죽음을 앞 둔 시점에서야 정말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 등에서 알려지고 여러 책에서도 소개된 적 있지만, 한국 최고의 재벌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던졌다는 삶과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도 교차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대부분 권력과 돈,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이 세 가지를 가지지 못하면 실망하며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또 대부분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후회하며 진지해진다고 한다. 그날이 오기 전에 좀 더 일찍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수호 〈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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