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코로나를 건너는 시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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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1 07:56  |  수정 2021-01-21 07:59  |  발행일 2021-01-21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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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소설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문화계 전반의 활동은 거의 멈췄다. 음악회나 공연, 전시회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문화예술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사람에 가닿는 일인데, 비대면을 권하는 사회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될수록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비대면으로는 진정한 소통에 이를 수 없다는 것. 코로나로 무기력감과 우울감만 늘어간다는 예술인들이 늘어만 간다. 어디 예술계뿐일까. 다들 외롭고 지리멸렬한 시간의 강을 건너는 중이다.

때아닌 외로움이나 고독에 대한 상념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둘 다 '홀로'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선 외로움이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생기는 고립감을 말한다. 상대가 없다면 외로움도 없다. 코로나로 인한 관계의 단절감이 외로움의 좋은 예시가 되겠다. 외로움은 처한 상황이나 사람의 기질에 따라 그것을 넘어선 내면의 파장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고독이다. 말하자면 외로움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고, 고독은 스스로와의 갈등에서 생기는 마음 상태다.

사전적 풀이와는 무관하게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맹목의 번민에 머물면 외로움이요, 목표가 있어 사색으로 이어지면 고독이다. 외로운 감정이 휘몰아친 뒤 자기 성찰의 단계로 나아가는 일, 그것이 고독의 상태다. 외로움이 타의적 부산물이라면 고독은 자의적 생산물이다. 외로우면 고독할 여지가 있지만, 고독하다고 다 외롭지는 않다.

성찰하고 성숙하려면 누가 뭐래도 혼자가 제격이다. 그러니 혹여 외로움이 찾아오면 거기에 머물지만 말고 고독의 시간을 채비하면 된다. 외롭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고독이란 감옥에 스스로를 유폐시켜 보는 거다. 단, 외로움이 지나치면 멜랑콜리가 되고 고독이 깊으면 염세주의로 빠질 수 있으니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

왜 선인들이 외로움은 타는 것이고 고독은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외로움을 타다가 고독을 즐기는 과정, 그 속에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코로나를 건너는 지금이야말로 외롭거나 고독하기에 적당한 때. 하기야 스스로를 대면하는 그 시간이 충분한 열매를 담보하지 못한들 어떠리. 혼자인 상태를 즐기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열매인 것을. 외로움과 고독의 의미까지 사색하게 만든 코로나19, 이 순간만이라도 너는 무죄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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