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램프(RAMP)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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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2 07:58  |  수정 2021-02-02 08:06  |  발행일 2021-02-0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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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변호사〉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 단어의 뜻을 아는 분은 영어 공부를 정말 많이 하셨거나 도로 관련 일을 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7~8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운전해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RAMP'라고 적힌 표지판을 본 적 있었다. 물론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LAMP)는 아닌 건 분명한데,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 집에 와서 찾아보니까 '입체 교차하는 두 개의 도로를 연결하는 도로의 경사진 부분'이라고 나왔다. 그 구간이 두 개 도로를 연결하는 경사진 도로니까 속도를 줄여서 안전운행을 하라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우리나라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램프구간'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는데, 이제는 고속도로 진입로 곳곳에서 '램프구간'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그 표지판을 볼 때마다 도로 전문가는 이 표지판의 의미를 잘 알겠지만, 운전자 중에서 '그 의미를 알고 안전 운행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로 표지판의 목적은 그 도로를 운행하는 운전자에게 도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지, 도로 전문가의 지식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도로정보 제공은 제공자의 수준이 아니라 제공받는 자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그 도로 표지판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 가치는 빵점에 가깝다. 물론 그 구간을 표시할 적당한 우리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인터체인지(interchange)'를 '나들목'이라고 바꿔서 사용하는 좋은 선례가 있다. 국민을 상대로 적당한 이름을 공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체불명의 영어가 우리 주위에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어라면 그래도 영어공부라도 한다고 하겠지만, 원어민도 모르는 영어 표현이 넘쳐난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을 '똑똑한 휴대전화'라고 바꾸자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영어까지 굳이 그대로 사용하는 건 곤란하다. 대구시의 '마스크 쓰GO 운동' 표어에도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더 언급하지 않겠다. 그래도 이 말은 하자. 말과 글은 그 사회의 가치를 담아내고, 그 사람이 쓰는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수준을 나타낸다. 아무도 우리 대신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문화도 곧 사라질 것이다.
김수호〈법무법인 우리하나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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