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적(敵)과 연결

  • 박진관
  • |
  • 입력 2021-02-03 07:52  |  수정 2021-02-03 07:54  |  발행일 2021-02-03 제18면

2021020201000090200002801
김민수 〈극작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거대한 우주의 먼지고, 영겁의 시간 속 그저 한 점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적'을 만들고, '적'과 싸우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걸까. 근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인지. 정치경제를 비롯한 모든 부분에 있어 '편 가르기'를 통해 '어떤 만족'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많다. 불가의 연기설에서는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라는 만물의 인과관계와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즉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거미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여기서 맹점은 알게 모르게. 그 말은 너무 쉽게, 너무 가볍게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은 바로 '연결'을 설명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필자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을 통해서다. 영화는 원작 '화염'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화염'은 일부 서사와 캐릭터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연결되어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비극적인 오이디푸스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데 이곳은 다시 '화염'의 여주인공 나왈의 비극적인 삶과 연결된다. 나왈이라는 개인의 비극은 레바논 내전으로 연결되고, 레바논 내전은 작가인 와즈디 무아와드의 삶과 연결된다. 그는 내전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고, 영주권 문제로 다시 캐나다 퀘벡으로 떠나야 했다. 그곳에서 그는 레바논 내전 당시 저항군으로 활동한 소하 베차라와 연결된다. 그녀의 삶은 란다 샤할 사바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연결되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마침내 '화염'이라는 작품이 탄생한다. '화염'은 다시 전쟁의 참혹함, 가족의 사랑, 희망과 용서라는 인류의 보편적 주제를 통해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와 연결된다.

이처럼 짧은 희곡 한 편도 수많은 거미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생사는 어떻겠는가. 서두에는 '그저 한 점'이라 절하하였으나,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연결'로 '연결'돼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분노하기보다는 설득하고, 적을 만들기보다는 공생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어느 책에서 읽었다. 사랑을 입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차별이라고. '적을 둔다'는 건 달리 말하면 상대에 대한 암묵적 차별일지도 모른다. '적'이 아닌 '연결'의 마음으로 이 갈등의 시대를 함께 이겨내 보자.

김민수 〈극작가〉

기자 이미지

박진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