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을의 사랑을 연민함

  • 박진관
  • |
  • 입력 2021-02-04 07:44  |  수정 2021-02-04 07:48  |  발행일 2021-02-04 제16면

프로필단정
김살로메〈소설가〉

시대는 변해도 사랑을 대하는 심리적·정서적 기제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사랑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부스럭거림은 기원전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 에로스적 사랑에 대한 부분이 '향연'인데, 읽다 보면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 고전이라는 일반적 편견을 거두어 가버린다.

소크라테스의 사랑을 차지한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축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예닐곱이 모였다. 이 축제의 장에서 에로스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는데 이것이 전반부다. 대화가 무르익는 후반부에 군인이자 정치가인 알키비아데스가 술에 취해 등장한다. 우승자인 아가톤에게 담쟁이덩굴과 제비꽃으로 된 화관을 씌워주러 왔다. 알키비아데스에게도 에로스 찬양을 이어받으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알키비아데스는 실은 축하보다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더 말하고 싶었으므로.

고대 그리스에서 성인 남자와 소년 남자가 에로스적 감정을 나누는 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아가톤에게 빠져 제 맘을 몰라주는 스승을 질투해 알키비아데스는 작정하고 성토해 버린다. 못생기고 괴팍한 신들에 빗대 스승의 외모를 비하하는가 하면 한편으론 전쟁터에서 겪었던 스승의 인품을 찬양한다. 그 인품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잘해줬다며, 아가톤을 향해 속지 말라며 이간질까지 한다. 버림받은 자의 격정을, 술을 핑계 삼아 쏟아내 버린다.

독사보다 더 아프게 무는 뱀에게 심장을 아니 마음을 물렸고, 지혜를 사랑하는 스승의 말에 물려 옴짝달싹할 수 없음을 자책하고 원망한다.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울부짖듯 연설하는 알키비아데스를 이해하게 되는 건, 인성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진 그 상황만은 진심이라는 것과 제 것이 될 수 없는 사랑을 부여잡은 일련의 풍경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자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그때서야 자네 마음눈이 밝아진다. 그러니 자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소신껏 일갈하는 소크라테스가 얄밉게 보이는 건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갑을 관계가 존재하고, 절박한 쪽은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이라는 씁쓸한 진실 때문이 아닐는지.
김살로메〈소설가〉

기자 이미지

박진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