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큰사람 곁에 두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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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1 07:52  |  수정 2021-02-11 08:54  |  발행일 2021-02-11 제21면

프로필단정
김살로메〈소설가〉

마트료시카 인형을 선물 받았다. 무심히 인형을 건네던 지인 왈, 글 쓸 때 막히면 매개물로 활용하란다. 아닌 게 아니라 한 글자도 나아가지 못할 때 눈에 띄는 물상에다 의미 부여를 하면 글 숨이 트일 때가 있다.

뚜껑을 열어 점점 작아지는 나무 인형들을 가지런히 세워본다. 열 개의 인형 중 마지막 것은 손톱보다도 작다. 어디선가 들은 마트료시카에 관한 교훈담이 떠오른다. 두 친구가 각자 회사를 차렸다. 하나는 승승장구하고 다른 한 명은 문을 닫았다. 실패한 친구가 비결을 물었다. 성공한 친구는 대답 대신 마트료시카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온 실패한 친구는 마지막 인형 몸통에서 깨알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성공한 이유는 나보다 큰 사람을 곁에 뒀기 때문이야.'

큰 사람 곁에 있으면 누구든 성장을 도모할 확률이 높다. 한데 어떤 이가 큰 사람일까. 코로나 때문에 단절된 생활을 하는 요즘,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한다. 간간이 좋은 의미로 주목받는 이들을 접한다. 독서든 예술이든 재테크든 그들은 대가 없이 알찬 정보와 지식을 전해주고 친절히 그 방안까지 제시해준다. 맥락 없고 논리 없는 악플에 시달릴 만도 한데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가진 것들을 나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그중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여럿이 갈수록 힘이 나는데, 외롭게 앞서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홀로 가두고 욕망할수록 몸과 마음만 피폐해진단다. 알고 보면 자신은 작디작은 사람일 뿐이라나. 더욱이 베풀고 나눈다고 해서 제 것이 결코 줄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닌 지식과 재능을 내놓을수록 더 큰 주변인들이 도와주고 지켜준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했단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록 눈 마주치며 만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그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야말로 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줍게 미소짓는 저 나무인형, 이제 '너 자신을 알라'는 상징물로 활용해도 좋겠다. 고이 포개 두었던 인형을 다시 일렬로 세운다. 하나, 둘, 모양은 같지만 점점 작아지는 열 개의 인형들. 손톱 만한 마지막 인형 앞에 오래 눈길을 맞춘다. 저 작은 모습에서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 그릇이 큼에도 제 그릇 작다며 더 큰 사람을 곁에 들이는 열린 자세. 간접 경험한 자체만으로도 마트료시카가 내게 온 이유로는 충분하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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