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추사 김정희 '세외선향(世外仙香)'…세상 밖 이치를 난초 香에서 배운다

  • 유선태
  • |
  • 입력 2021-02-26   |  발행일 2021-02-26 제37면   |  수정 2021-02-26

세외선향
김정희 '세외선향(世外仙香)', 종이에 수묵, 22.8×27㎝, 간송미술관 소장

코 끝이 알싸하다. 매서운 한파에 춘란(春蘭)이 꽃대를 보이더니 드디어 꽃이 피었다. 천리향 나무에도 별 모양의 꽃이 소복하다. 연분홍의 작은 꽃망울이 향기를 발산한다. 화초에서도 꽃대가 올랐다. 우리 집 베란다는 이미 봄이다.

추위가 매울수록 춘란의 향기는 더욱 진하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외선향(世外仙香)'을 보며 난향을 감상한다. 세외선향은 '세상 밖의 신선 향기'라는 뜻이다. 영지와 난초가 꽃향기 그윽한 낙원으로 이끈다.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는 청나라의 금석학(金石學)과 고증학(考證學)을 조선에 정립한 국제적인 학자였다. 명석한 두뇌와 명망 높은 가문, 천부적인 소질로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았다. 출세가 보장된 그의 곁에는 세력가와 문장가들이 모여 들었다.

1809년에는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으로 간다. 그곳에서 접한 청의 문화와 예술은 놀라웠다. 연경에서 만난 금석학의 대학자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완원(阮元, 1764~1849)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금석학과 고증학은 조선 말기의 금석학파를 형성한다. 그는 청의 예술과 문화, 학문을 도입해 국제정세에 맞는 남종문인화를 선도한다.

완벽하게 갖춘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 앞날이 창창하던 그에게도 먹구름이 낀다. 제주도 유배를 시작으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840년부터 1849년까지 8년3개월의 제주도 유배생활은 고통스러웠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은 명석한 이의 선택이다. 그는 제주도에서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다.

김정희는 '해동의 유마거사'라 불릴 정도로 불교 교리에 밝았고 저술과 예술에는 불교 정신이 깊게 서려 있었다. 당대의 대선사인 백파(白坡, 1767~1852)와 논쟁을 벌였는가 하면 초의(草衣, 1786~1866) 선사와는 제주도에서 6개월간 함께할 정도로 우정이 깊었다. 또 제주도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는 2년을 초의선사와 함께 지내며 학문과 예술을 논했다.

30여 년 동안 난을 그리면서 배우고 익힌 김정희는 난 치는 법의 교과서인 '난맹첩(蘭盟帖)'을 만들었다. '난맹첩'은 상·하 두 권에 각각 10폭과 6폭씩 그가 직접 시범을 보인 작품들을 묶은 것이다. 난 그림과 그 유래를 소개한 뒤 "신해년(1851) 12월 노천(老泉) 방윤명에게 준다"고 적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것을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하듯이 뜻을 같이하는 모임을 '난맹(蘭盟)'이라 한다. 난을 사랑하고 난을 치며 즐기는 이들의 모임인, 일종의 난 동우회 같은 것이다.

'세외선향'은 '난맹첩' 상권에 편집돼 있다가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영지와 난초가 어우러진 수묵화로 예사롭지 않은 자태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왼쪽이 영지와 난초, 제시와 인장을 위한 공간이라면 오른쪽은 난잎과 꽃대가 자유롭게 공간을 책임지는 구도다. 난잎이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하나의 꽃대에 핀 9개의 꽃이 향기를 날리고 있다. 중간 먹색으로 난잎을 그렸다. 조금 더 옅은 먹색으로 꽃을 그린 다음 짙은 먹으로 꽃심을 찍었다. 난초 왼쪽에는 중간 먹색으로 영지나무 한 그루에 두 개의 영지를 그렸다. 사의적인 난초와 영지다. 노련한 기법에서 서기(瑞氣)가 감돈다.

2021021801000659900026621
김남희 화가

왼쪽 위에 '세외선향'이라는 제시가 단단하면서도 꾸밈이 없다. 서체가 세상 밖에서 들려오는 신선의 소리 같기도 하다. 제시 옆에 '거사(居士)'라는 관서를 배치하고, 아래쪽에 '우연욕서(偶然欲書, 우연히 글씨 쓰고 싶다)'라는 인장을 찍었다. 난과 영지는 대체로 중간 먹색을 사용한 반면 제시는 짙은 먹으로 서로 조화를 꾀했다. 붉은 인장이 난향처럼 짙다.

명대의 서예가이자 화가인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은 난향을 즐겨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향조암(香祖庵)'이라 지었다. 김정희의 난 사랑도 동기창 못지 않다. 그는 '난초를 모든 향기의 원조'라며 난향을 음미하는 한편 난 그림에 혼을 실어 '불이선란(不二禪蘭)' 같은 걸작을 남겼다.

춘란을 선두로 화초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향기대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두 그루의 난에서 세 개의 꽃대가 품어내는 향기가 거실을 채운다. '세외선향'을 보며 세상 밖의 이치를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배운다. 


화가 2572kim@naver.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