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착하다는 말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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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5 08:04  |  수정 2021-02-25 08:08  |  발행일 2021-02-25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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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 〈소설가〉

누가 봐도 착한 성품을 지닌 친구가 있었다. 그가 그 말을 거부하기 전까지 우리는 '착하다'는 말이 그를 향한 최대의 칭찬인 줄 알았다. 어느 날 "넌 착하잖아. 넌 원래 착했어"라는 말끝에 그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착하다'는 것"이라고. 그 말이 뜻하는 원래의 품격 대신 시쳇말로 '호구'라는 함의도 있음을 체험한 이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보편적인 교양을 학습한 우리는 이런 생활 철학을 당연시한다. 물리적 계층은 있을지언정 위계적 계급은 없는 사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사람 모인 곳에 계급의식이 없을 리 만무하다. 이러한 양상은 언어를 통해서 드러난다. 맘만 먹으면 우리는 십분 이내에 관찰 대상자의 현재적 위상을 읽어낼 수 있다. 대상자들끼리 쓰는 언어 속에 모든 계급적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앞의 '착하다'는 말로 돌아가자. 착하다는 말은 어른이 아이에게 쓰는 말로서는 어울리지만, 아이가 어른에게 쓰기에는 어색하다. 한때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크리스티나가 '우리 시어머니 참 착해요'라고 하이 톤 콧소리로 명랑하게 말할 때,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분위기를 살렸다. 그 웃음은 겉으로는 착하다는 말의 한국적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한 이방인에 대한 아량을 의미했다. 하지만 속내는 무의식적이나마 그 말이 뜻하는 계급적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반면에 '선하다'라는 말을 보자. 그 말은 어른·아이 구별하지 않고 쓰이지만 대개 전자에 많이 쓰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낱말의 영어 뜻은 같다. 하지만 우리말에서 그 둘의 쓰임새는 사전적 풀이부터 묘하게 다르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를 때 착한 것이 되고, 거기에 도덕적 기준이 더해지면 선한 것이 된다. 단순히 어른(권력)의 질서나 요구에 순응하면 착한 것이 되고, 거기에다 도덕적 판단이 덧붙으면 선한 것이 된다. 따라서 계급 언어의 하단에 속하는, 착한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아도 좋다. 요구하면 따르고 부탁하면 들어주는 일방적 착함 대신 부당하면 거부하고 곤란하면 거절하는 판단의 선함도 나쁘지 않다. 언어가 계급을 규정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한 친구의 고백에 고개 끄덕이게 되는 봄날이다.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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