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커제 꺾고 LG배 우승 신민준 9단 "이세돌 사부의 원수 갚았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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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7   |  발행일 2021-03-17 제13면   |  수정 2021-06-2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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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열린 제25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서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커제 9단을 꺾은 신민준 9단은 "진돗개 정신으로 패기 있게 바둑을 둔 게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앞으로 진정한 세계 1인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지난 2월 한국 바둑에서 또 한 명의 세계 챔피언이 탄생했다. '한국 바둑의 미래' 신민준(22) 9단이 주인공이다. 신민준은 중국 랭킹 1위인 커제 9단을 물리치고 제25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서 당당히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한국 바둑 랭킹 4위인 신민준에게 진 커제는 경기 종료 후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통산 8번 우승한 커제가 결승전에서 패한 것은 2016년 바이링배 이후 5년 만이었다.

신민준의 우승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에게는 생애 첫 메이저 세계 타이틀 챔피언이라는 영광을 안겨줬다. 신민준은 한국 기사로는 통산 15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자다. 한국 바둑계에서는 한국 바둑이 다시 중국 바둑을 누르기 시작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인다. 한국과 중국 기사가 맞붙은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이 승리한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 기사와의 대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가운데 신민준이 한국 바둑의 벽이었던 커제를 완파함으로써 세계바둑 판도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신민준은 13세 때인 2012년 제1회 영재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에 들어온 뒤 8년여 만에 메이저 세계대회 챔피언이 됐다. 신민준과 커제의 대결을 앞두고 대부분 전문가가 커제의 우승을 예상했다. 신민준이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전에 처음 올라온 데다 그 상대가 세계 최강 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국을 커제에게 내준 뒤 수세에 몰렸지만, 신민준은 2·3국에서 내리 이겨 우승컵을 안았다. 그래서 더 뜻깊은 승리였다.

이세돌 9단에 패배 안긴 커제
알파고에 졌을땐 비아냥거려
'내제자'로서 결초보은한 심정

메이저 국제기전 결승 계기로
승부처에 서두르는 단점 보강
진정한 세계최강 되도록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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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준 9단이 제25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서 승리한 뒤 우승컵을 들고 있다.

▶결승전에서 힘겨운 상대를 만나 많이 긴장했을 텐데도 승리했다. 명실상부한 세계 바둑계 최강자 반열에 올랐는데.

"메이저 세계대회 첫 우승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우승은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제 정상권에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앞으로 진정한 세계 1인자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커제와의 대결에서 1국에 패한 뒤 심적 부담이 컸을 듯하다.

"1국을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내준 것 같아 스스로 실망했다. 2·3국은 비록 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진돗개 정신으로 대결하자 다짐했다. 패기 있게 바둑을 두려한 게 승리로 이어진 것 같다."

▶2국에서 승리한 뒤 '커제를 꺾고 우승하는 기적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3국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나.

"솔직히 큰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이라는 말처럼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 먹었다."

▶결승전에 앞서 엄청난 심적 부담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전은 처음이라 너무 떨렸다. 부담감에 결승 직전의 다른 국내 대회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자신감이 떨어져 결승전에서는 심리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1국을 지고 난 뒤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이 큰 도움이 됐다. '이만큼 올라온 것만 해도 대견하다. 이기려는 부담감을 떨치고 후회 없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거라. 이 순간을 즐겨라.' 그 말이 쏙 귀에 들어왔고 마음이 한결 안정됐다. 커제도 승부에 대한 부담감은 나와 똑같았을 것으로 생각하며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언제쯤 승리를 자신했는가.

"마지막 3국에서 백돌을 잡아 2국과 마찬가지로 두껍게 판을 짜며 커제를 상대했다. 커제가 역전승을 잘 거두는 끈질긴 승부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한 적은 없었다. 끝까지 형세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커제를 이긴 것이 더욱 감격스러운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커제는 세계대회에서 무려 8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던 최고의 기사다. 강자를 이겼다는 점도 좋았지만, 이세돌 사부의 원수(?)를 갚았다는 의미도 있었다. 사부는 커제에게 패한 아픔이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사부가 패했을 때 커제가 비아냥거렸다. 제자가 사부에게 비수를 날린 커제를 꺾은 것이다. 5개월여 내제자(內弟子·스승의 집에서 동거하며 배우는 바둑 제자)로 있으면서 입은 은혜를 결초보은한 심정이었다."

▶그동안 여러 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

"2016년과 2018년 메지온배 신인왕전, 2019년 KBS 바둑왕전, 2019년 20세 이하 기사가 출전하는 글로비스배 국제 신예대회에서 우승했다. 2017년에 거둔 농심 신라면배 6연승도 있다. 이것은 아직 한국 신기록이다."

▶바둑을 시작한 계기가 있는가.

"여섯 살 때 아버지께서 인터넷 바둑 두시는 것을 보고 흥미를 보이자 아버지께서 동네 바둑학원에 보내서 시작하게 됐다. 바둑을 배운 지 1년쯤 지나 실력이 어느 정도 늘자 아버지께서 보라매공원이나 여러 기원의 바둑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원정 대국을 하게 했다. 바둑 실력을 쌓게 한 것은 물론 바둑에 대한 애정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은.

"바둑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똑같은 판이 아닌 매번 새로운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게 늘 신선함을 준다."

▶평소 바둑 공부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요즘은 인터넷 대국을 한 후 AI로 복기하는 식의 공부를 많이 한다."

▶자신의 바둑에 단점이 있다면.

"승부처에서 너무 서두르는 게 약점이었다. 하지만 LG배 결승전을 계기로 약점이 많이 보강되었다."

▶현재 세계 바둑계에서 최고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뛰어난 바둑기사가 많지만 신진서 9단과 박정환 9단, 커제와 양딩신 9단이라고 생각한다."

▶역대 바둑기사 중 특별히 좋아하는 기사가 있는가.

"이세돌 사범과 이창호 사범을 좋아하고 이들 사범의 바둑을 보면서 공부도 했다. 이세돌 사범은 내제자로 지냈기 때문에 각별한 정이 있다. 이창호 사범은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늘 존경하던 분이었다."

▶대구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아버지(신창석 KBS PD)의 고향이 대구라서 대구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대구에 친근감이 있다."

▶올해 대국 일정은.

"바둑리그 결승과 삼성화재배 예선전이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프로기사가 되고 싶은가.

"큰 승부에 강하고 국제전에서도 흔들림 없는 기사가 되고 싶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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