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1년 만에 무너진 巨與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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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2  |  수정 2021-04-02 07:11  |  발행일 2021-04-02 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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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파리가 빌 때 때려잡자." 최근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가장 모멸적 희롱이다. 여당 후보,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 싹싹 빌고 있는 것을 비아냥거린 말이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때려잡아야 할 때다"고 한 10여년 전 조국의 말을 진중권이 페이스북에 공유한 발상은 기발했다. '저작권'은 조국의 것인 셈인데 진중권이 이를 그대로 되받아쳤으니 얼마나 굴욕적인가. '넘어진 놈 다시 못 일어나게 끝까지 지근지근 밟자'는 두 사람의 성정은 본받을 바 못 되지만, 비유의 통쾌함은 충분히 즐길 만하다. 딱히 반박할 명분도 면목도 없는 게 여권의 처지다.

석고대죄, 고해성사가 줄을 잇는다. 시쳇말로 '1도' 진정성 느껴지지 않는다. 정파성이 강한 전투용 어법이지만 진중권의 말을 다시 옮겨보자. "네거티브 백날 해 봐라, 통하나. 막대기 세워놔도 (야당후보)당선된다." '막대기'가 TK만 아니고 서울·부산에도 등장한다니…. 여·야 후보 간 20~30% 지지율 격차는 수십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20% 앞서다 역전패 당한 박찬종'(1995년 서울시장 선거)을 추억하는가. 요행을 바라지 말라. 승부는 이미 끝났다.

격세지감이다. 꼭 1년 전, 21대 총선 때는 야당이 싹싹 빌었다. 화가 덜 풀린 국민은 기어이 용서하지 않았다. 190석을 여권에 헌사했다. 과분한 대승에 '무섭다'고 한 청와대. 그 반응이 섬뜩했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로또의 비가(悲歌)'처럼 낯선 행운 뒤에 감춰진 불안한 미래가 불길했던 거다. 대승 1년 만에 무너진 거여의 참담한 모습. 아직은 덜 애처롭다. 더 간절한, 더 진솔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늦었지만 외양간 제대로 고치겠다'고?(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진단과 처방 모두 틀렸다. 외양간은 이미 무너졌다. '반전의 마지막 기회'(문재인 대통령)는 또 뭔가. 아직 그렇게도 모르겠나. 반전을 꿈꾸지 말라. '절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이낙연 민주당 선대위원장)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다시 쌓는 마음을 갖는 게 좋을 게다. 축성엔 남은 1년이 짧지만, 쌓다 보면 성이 된다. 잘못 가고 있는 걸 알고도 왜 옛길에서 서성이나. 바로 돌아나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처럼, 오롯이 스스로의 본령과 존재이유를 증명할 때 국민께서 여지없이 마음을 내어주실 것'(이재명 경기도지사)을 믿어보라.

'50년 집권'을 노래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김조원의 '직(職) 대신 집', 노영민의 '똘똘한 한 채', 김의겸의 '대출 갭투기'로도 모자라 김상조의 '내로남불 전셋값'이 부아를 뒤집어 놨다. 24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이 번번이 실패한 이유가 따로 없다. 오만의 바벨탑을 쌓았다. 190석으로 감히 하늘에 닿으려 했는가. 이 오만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면 분노한 신(神)이 벽돌 위의 벽돌을 한 장도 남김없이 쓸어버릴 것이다. 보선 승패가 레임덕 여부를 결정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레임덕은 벌써 시작됐다. 여당 후보의 점퍼에 당명이 사라지고, 홍보물에 대통령의 흔적이 깨끗이 지워졌다. 레임덕의 명징한 징조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 당적을 버리던 사나운 꼴을 또 보게 된다.

한 시대가 가고 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가는 시간 억지로 붙잡지 마라. '대의를 명분으로 약자의 목소리를 짓밟는 것이 오늘날 586세대의 민주주의라면, 그 민주주의는 끝나야 마땅하다'(정의당)는데 동의한다. 반전(反轉)? 이 정부의 몫이 아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없다. 내가 대속(代贖)의 십자가를 져야 내일 누군가가 새 성(城)을 쌓는다. 딱 그 역할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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