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당신의 커피취향은? 체질 분석하듯 테스트…카페 사장들의 단골 카페 '블랙로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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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3   |  발행일 2021-04-23 제35면   |  수정 2021-04-2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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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드의 가장 큰 매력은 출입명부 같은 커피도감을 체킹해가면서 단계별 모두 16종의 커피를 맛보게 한다는 것이다. 취향별로 디테일하게 정리한 노트인 도감은 환자 진료기록표처럼 벽장에 꽂혀 있다. 일종의 가이드북 겸 출입부다. 스태프들은 커피도감을 보고 고객에게 다음 단계의 커피를 권할 수 있다.

이치훈(34·사장)·이호열(34·부사장)·문슬기(34·총괄 매니저)·배창훈(33·바리스타)·장재혁(28·메인 바리스타).

5명의 교차점은 뭘까? '커피'다. 내친김에 국제적 명성을 가진 특별한 맛의 고품격 커피전문점(스페셜티 커피숍)을 추구한다. 대구를 베이스캠프로 찜한 이유가 있다. 한국 커피산업의 여명기를 밝힌 도시 중 하나가 대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대구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운명이기도 한 이 야심찬 커피숍을 국제적 규모로 키우려고 서울도 아닌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거리 언저리에 '블랙로드(Black road)'를 연초에 오픈했다. 커피명가, 핸즈커피, 다빈치, 모깜보, 시애틀 잠못 이루는 밤, 브릿지, 로스팅로보, 커피인, 피터스커피 등 대구발 커피 브랜드의 등장과 영업전략 등을 다면적으로 분석했다.


"커피, 기호식품 아닌 문화"
절정의 맛 추구하는 5인방
국내 유일 커피탐험 마케팅
16종을 8~9가지 방식 추출

손님 취향 꼼꼼하게 체크해
출입부같은 '커피도감' 작성
재방문 때 취향저격 안내서

커피 마니아들을 위한 공간
1만원 안팎 '고퀄' 선택하면
리필 대신 맛보기 3잔 제공
인테리어도 커피맛에 집중
'과한 단맛' 디저트도 없어
서울·제주…전국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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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자주 오게 되면 이동 빈도에 따라 초·중·고급용 배지를 선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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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드와 동고동락하는 검은색 커피잔.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로고가 인상적이다.

◆5인의 커피 탐험가

블랙로드를 방문한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여느 커피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톡톡 튀는 독특한 영업방식이 커피맛 못지 않게 인구에 꽤 회자되고 있다. 이들은 커피를 기호식품으로 보지 않는다. 당당히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스스로를 커피 바다를 탐험하는 '커피 전도사'라 여긴다. 당연히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커피를 대충 우려내 내놓을 수도 없다. 책에 의존한 정보도 최대한 검증하려 한다. 특정 커피 생산 국가의 토양·햇살·바람, 그리고 매년 달라지는 수급량과 가격, 수입업자의 동태까지도 방정식처럼 풀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연 세 차례 계획된 해외 커피산지 현지 방문은 현재로선 중단.

그들에겐 커피산업도 신종 IT산업이다. 애플의 전설이 된 스티브잡스,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거, 음식배달의 신기원을 개척한 배달의민족 대표 김봉진처럼 커피산업계의 풍운아가 되기 위해 블랙로드에 삶의 닻을 내렸다. 늘 '절정의 커피를 단골의 영혼 속까지 연결시키자'고 서로를 독려한다. 지구가 멈추는 순간까지 커피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저마다 하는 일도 성격도 달랐지만 이젠 한 목소리다. 커피에 배수진을 친 탓이다.

빡세게 오픈 준비를 했다.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커피서비스시스템을 찾아 나섰다. 국내엔 참고할 만한 커피점이 없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카페 '마메야'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 그 공간에 들어가면 다른 잡념은 커피 속에 다 녹아버린다. 손님이 커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각별한 맨투맨식 손님 응대 방식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일단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커피콩을 다양한 방식으로 로스팅하고 그걸 여러 버전으로 핸드드립해서 최상의 방식으로 단골에게 서빙하는 매뉴얼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매주 목요일 오후 4시30분 비상이 걸린다. 5인방의 혀는 새롭게 선택된 신종 커피의 물성의 장담점을 분석한다. 그걸 메뉴북에 새롭게 올려도 좋은 건지 피튀기게 '커핑토론'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지금까지 무려 5천여 가지 커피 샘플의 맛을 봤단다. 그게 가능한가 싶다.

◆특별하고 재밌는 커피도감

5명의 스피릿은 소통한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 잘 안다. 죽도록 일하고 놀 때는 확실히 논다. 재충전 타임이 영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치훈과 이호열은 친구 사이, 문슬기는 영상학을 전공했는데 경남 거제도에 있다가 오픈 과정에 러브콜을 받고 합류했다. 작곡가의 꿈을 꾸던 장재혁은 매장을 관리한다. 그리고 한 달 전 가장 늦게 블랙로드맨이 되기 위해 가세한 배창훈은 정말 말수가 적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업무를 커버한다. 손님 응대 파트다. 입구 오른편 데스크 앞에 서서 커피탐험을 처음 떠나는 이를 도와준다. 그는 갓 입원실에 들어온 환자를 대하듯 초행길인 손님을 살갑게 맞이한다. 이후 무려 15분가량 손님한테 집중한다. 강배전인지 약배전인지 손님이 어떤 취향의 커피를 좋아하는지 체질분석하듯 꼼꼼하게 체크한다.

이들은 초심자보다 커피 마니아를 주타깃으로 정했다. 일반인은 여기 오면 너무 친절해 좀 당황한다. 안절부절못하면 취향에 맞는 다른 커피숍으로 가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준다.

첫 방문자는 메인 커피를 먹기 전에 '커피식감 테스트'를 받게 된다.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세 종류의 커피(내추럴·워시드(Washed)·무산소발효 계열)를 차례로 맛보게 한다. 내게 맞는 맛의 순위를 매기게 한다. 요즘 다들 신맛 계열의 커피를 많이 꺼린다. 그래서 신맛에 대한 반응도를 더 잘 살핀다. 그리고 민트·시나몬 등과 같은 허브향 커피에 대한 선호도도 파악한다. 그렇게 취향별로 디테일하게 정리한 노트가 바로 이 집의 랜드마크랄 수 있는 '커피도감'이다. 일종의 커피탐험 가이드북 겸 출입부다. 그게 이 집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현재 비치된 개인별 커피도감은 약 700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걸 감안하면 만만찮은 숫자다. 도감은 환자 진료기록표처럼 벽장에 꽂혀 있다. 입장하면 커피도감을 앉은 자리 앞으로 갖다 놓는다. 스태프는 커피도감을 보고 단골이 지금 어느 정도의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다음 단계의 커피를 권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선 그 정도로 정성스럽게 손님의 눈높이에 맞게 고급지게 커피를 마시게 챙겨주는 살가운 커피점을 기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 제주도, 인천, 심지어 SNS 소문을 듣고 이 집을 찾은 프랑스 커피투어족도 있다. 지역의 커피숍 주인들도 다수 단골이다.

이용 빈도에 따라 단골도 초·중·고급으로 분류해 놓았다. 세 번 정도 방문하면 초급, 3개월 정도 출입을 하면 중급, 그리고 1년 정도 지나면 마스터로 분류한다. 단계별 배지를 선물로 달아준다. 손님들은 이게 모두 영업전략인 줄 알면서도 다들 은근히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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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훈·배창훈·이호열·문슬기·장재혁(왼쪽부터). 5명의 교차점은 뭘까? '커피'다. 내친김에 국제적 명성을 가진 특별한 맛의 고품격 커피전문점(스페셜티 커피숍)을 추구한다. 이들의 사업 모토는 커피를 하나의 문화로 설정하고 단골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줘 멋진 커피투어를 할 수 있게 가이드하는 데 이들은 이를 '탐험(Explore)'이란 콘셉트로 풀어나간다. 이들은 이를 위해 탐험가 같은 브라운 유니폼을 입고 근무한다.

◆16종의 커피

예심과 본심을 거친 모두 16종의 커피 리스트업이 형성됐다. 비싼 건 한 잔에 1만8천원. 너무나 유명한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다. 1만원 안팎의 고퀄리티 커피를 마시면 리필해주는 대신 별도의 에스프레소 크기 잔에 세 종류의 다른 커피를 동시에 맛볼 수 있게 배려한다. 커피 종류에 따라 드립 방식도 8~9가지를 번갈아 사용한다. 허브향을 가미하고 싶을 땐 하리오, 신맛을 살릴 때는 오리가미 드립을 구사한다.

1층은 2층 커피를 위한 전장이다. 하루 130~140㎏의 콩을 볶을 수 있는 미국산 로스팅기기인 '로링(Loring)'이 터줏대감 구실을 한다. 1억원 상당의 이 고급 기계는 한 번에 7㎏을 볶을 수 있다. 로스팅 책임자는 이호열. 그의 눈빛은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를 닮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수작업만이 능사는 아니라 여긴다. 어떤 바리스타는 10년 이상 일기를 적듯 로스팅 일지를 꼼꼼하게 적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굳이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단다. 완벽에 가까운 커피 머신 탓이다. 노트북과 연동시키면 최적의 로스팅 제약조건을 자동적으로 빅데이터로 저장해 놓는다. 나머지는 기계가 알아서 다 챙겨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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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탐험가 맛이 풍기는 브라운톤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인테리어는 지역에 있는 해머디자인 최가람 대표가 맡았다. 외벽은 다크그린을 칠했고 내부는 자신의 커피에 집중할 수 있게 조도를 매우 낮췄다. 손님도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 못하게 공간 배치를 했다. 꽉 차봐야 14명 정도다. 그리고 절정의 커피를 제대로 음향하는데 상당히 방해가 될 수 있는 과도한 단맛의 디저트류의 케이크와 빵도 덧붙이지 않았다. 개념이 있는 손님을 환영한다. 커피의 물성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은 굳이 손님의 범주에 넣지 않았다.

블랙로드는 손님도 갑이고 직원도 갑이란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맘대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대표는 이치훈. 그는 부산 태종대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정 기간 한진해운 항해사였다. 그때의 나에겐 날마다 이어지는 회식문화와 자기발전 없는 생활들이 너무나 회의감이 들었고 나만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갑자기 성경 전도서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일이 즐거운 사람이야말로 가장 복되다'는 구절이었다. 그때 바로 커피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커피로 삶의 행로를 정한 건 대학 3학년 때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해서 커피란 상품을 탐험이란 콘셉트에 녹여내는 신마케팅 기법을 개발했다.

부대표인 이호열의 인생목표는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게 살자'였다. 하지만 친구인 이 대표의 조금은 심오하고 조금은 철학적인, 그러나 깊고 긴 목적을 듣고 목표를 '세상에서 조금만 특별하게 살자'로 수정한다. 대구 중구 봉산문화1길 11 2층. 0507-1341-8627. 매주 일·월요일 휴무.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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