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릴레이 기고] 문재인정부 4년 평가와 과제〈상〉...외교, 길 잃은 한국외교 어디로 가야 하나

  •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HK+ 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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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8   |  발행일 2021-05-18 제5면   |  수정 2021-05-1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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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HK+ 국가전략사업단장〉

북·미 갈등과 남북 대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4년 전,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4주년을 맞았다. 복잡한 국내적 상황과 출범 당시의 전쟁 분위기에서 남·북 소통을 통해 평창올림픽을 치르고, 북·미 정상회담을 끌어낸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갤럽의 여론조사(4월30일자)는 한때 83%의 지지를 얻었던 대북정책은 24%로, 외교정책은 29%로 지지도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적 실망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냉엄한 국제 환경에서 국가 지도자는 안전 확보와 경제 발전이라는 이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지난 4년의 결과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북한 도발의 축소란 성과는 있었지만, 북한은 현 정부를 무시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 완화는커녕 '핵보유국 북한'에 시간만 벌어준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를 마주한 꼴이 됐다.

트럼프의 영향도 있지만 한·미 동맹도 예전 같지 않고, 위안부 문제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로 틀어진 한·일 관계는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대북 영향력과 경제 관계를 고려해 우호적인 대중 관계 설정에 노력했지만, 시진핑 주석의 방한 저울질에서 보듯이 중국은 우리 의도보다는 국제정치 현실을 우선 고려한다.

지난 4년 한국 외교는 대북 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움직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반도에 최대 영향을 미치는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북한이란 직접적 위협 세력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의 외교는 보다 다층적이어야 한다.

남북관계와 연계된 지역구상을 바탕으로 글로벌 차원의 역할론 같은 방향설정이 필요했다. 노무현 정부도 대북정책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안보 담론으로서 균형자론을 제기하고 동북아 구상으로 연계시켰다. 박근혜 정부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같은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현 정부는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그 결과 한국 외교는 방향을 잡지 못했다. 냉엄한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지나친 '대북 몰입주의'가 핵심 외교정책으로 치환되면서 한국이 지향해야 할 정상적인 외교 프레임과 담론은 실종됐다.

남북관계에 방점을 찍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역시 남북 합의에만 올인하면서 관련국 설득에 실패했다. 국내적으로도 외교 전략이 정파적 대상으로 전락해 진영 갈등만 증폭된 아쉬움이 크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적 외교자산을 모두 남북관계에 써버리는 통에 글로벌 사회에서도 역할을 잃었다. 코로나19에 대한 통제로 한국식 방역이 반짝했지만, 백신 수급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 미·중 갈등 국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란 애매한 태도가 스스로 발목을 죄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지만, 동맹관계인 대미 관계에 있어 적어도 우리의 협력 범위를 분명히 해둘 필요는 있다.

70년이 넘는 한미 동맹 관계의 선제적 재조정이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을 담보하는 마중물이 될 수는 없다. 사드(THAAD)의 아픔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중국 역할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중국의 압박에 저항하지 못하는 국가란 잘못된 메시지가 반복되고 있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안정은 한국 안보의 핵심이며 대중 지렛대 역할도 한다. 한미동맹은 이제 한 걸음 나아가 한국의 이익을 국제사회에 폭넓게 투사할 수 있고 한국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음하는 사이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출범했고, 미국은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를 내놓았다. 제재를 계속 유지하면서 북한의 선 비핵화 조치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톱다운방식 빅딜 추진의 중간 성격으로 북한을 대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올 초 노동당 대회에서 대중 밀착을 선언했고, 중국도 이를 수용했다. 이 점에서 현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접근 방법과 중국 사안에 분명한 온도 차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핵을 외교수단으로 사용했던 김정일과 달리 실질적인 안보 수단으로 핵을 운용하려는 김정은에게 '평화'라는 구호는 억지력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의 성장 메커니즘 환경이 변하고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임에도 북한 문제에 몰입하다 보니 생존전략과 국제적 역할론을 설정하지 못해 외교 역량으로 구현되지 못한 데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국가안보에 미치는 국제 현안의 중대성이 심화하고 있고, 대선을 앞둔 국내정치 여건상 사안들의 복잡성이 심화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외교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현실 인식이다. 이 점에서 임기 말 정부는 국익과 정치적 이익 우선론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은 1년, 국내 정치를 목적으로 외교정책을 활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더불어 대북 사안 재검토를 통해 지역적 구상도 정비하고 미·중 사이에서 국익 중심의 입지를 찾는 내실화 작업에 몰두할 필요가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HK+ 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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