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고 내리꽂고 이유없는 급등락… 가상화폐 닮은꼴 스팩株 심상찮다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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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7   |  발행일 2021-06-07 제18면   |  수정 2021-06-07 07:25
자체 기업가치 없이 비상장社 합병 목적으로 만든 페이퍼컴퍼니

시가총액 규모 작고 유통물량도 적어 시세조종 상대적으로 쉬워

삼성스팩4호 상장 2주새 주가 5배 상승 등 스팩株 전체 이상과열

'투기판' 변질·피해 우려에 한국거래소 20개 종목 기획감시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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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금융시장에서 가장 핫(Hot) 한 단어는 가상화폐가 아니다. 머스크라는 제어 불가능한 빅마우스와 미·중의 쌍끌이 악재로 충격을 받은 가상화폐 시장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 틈을 타 이른바 '스팩'이 주식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특별한 호재 없이 상한가를 쉼 없이 찍다가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하기도 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유 없이 급등락을 거듭하니 투자의 시간이 지나고 투기의 시간이 왔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업인수목적회사 '스팩'

스팩은 기업인수목적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줄임말이다. 비상장 기업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설립되는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다. 증시에 상장됐지만 그 자체의 기업가치가 있는 종목이 아니다.

스팩은 증권사가 신주를 먼저 발행해 공모자금을 모아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3년 이내에 비상장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이다. 스팩 주주는 기업의 인수합병(M&A)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비상장 기업이 기업공개(IPO) 절차를 거치지 않고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회상장과 비슷하지만 미리 스팩공모로 보유한 자금을 합병자금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선호되고 있다.

◆스팩 투자 왜 뜨거워지나

스팩의 투자 시점은 주로 3단계로 나눠진다. 첫째는 상장 주관사(주로 증권사)가 서류상 회사를 만들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단계다. 둘째는 합병승인 이후 합병 직전까지의 단계며, 마지막으로 합병 완료 직후 시너지 단계다.

첫째 단계인 스팩으로 증시에 상장된 종목에 투자하는 '페이퍼 컴퍼니 단계' 투자는 일종의 복권에 비유된다. 우량 비상장회사를 발굴해 합병하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성공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흥국증권에 따르면 2020년까지의 누적 합병성공률은 50% 수준이다. 딱 절반은 투자수익을, 나머지 절반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둘째 단계는 합병공시가 나오고 합병승인 및 합병기업의 상장 직전까지다. 이때가 스팩 투자자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시점이다. 거래량이 급증하고 주가 변동성도 커진다.

마지막 셋째는 합병이 완료된 후 합병 신(新)주가 모두 상장된 이후다. 이때부터는 일반 코스닥 주식과 마찬가지다. 다만 스팩 합병 기업들은 합병한 해에 한 해 합병 비용, 상장 비용 또는 합병 상장 비용이라는 일회성 영업외비용으로 10억~20억원에서 100억원까지 재무제표에 반영한다. 기저효과에 따른 실적 호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5월부터 급등락 장세

이처럼 스팩은 실적이 없다. 따라서 주가 상승 재료는 합병밖에 없다. 당연히 합병 대상 기업이 발표되기 전까지 대개 주가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이 같은 패턴이 최근 연달아 깨지고 있다. 합병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주가가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발단은 '삼성스팩2호'였다. 2018년 9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삼성스팩2호는 지난 4월까지 공모가인 2천원대 후반에 머물렀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 엔피와 합병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넷플릭스가 메타버스 구독형 게임 서비스 진출을 계획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상한가로 치솟았다. 지난달 21일 상장한 '삼성스팩4호'는 여섯 번이나 상한가를 찍으면서 주가가 5배 급등했다. 2천원에 상장한 주가는 한때 1만원대를 넘어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스팩4호가 삼성그룹 비상장 자회사와 합병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밖에도 SK4호스팩, 유진스팩6호, 하이제6호스팩, 신영스팩6호 등 종목 이름에 '스팩'만 있으면 주가가 급등했다.

◆거래소, 스팩 급등주 기획감시

이처럼 이유 없이 주가 변동 폭이 커지자 이를 투기의 현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는 거래정지,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다소 비정상적인 흐름이다.

상당수 스팩 종목이 시가총액 규모가 작고 유통물량이 적다. 즉 시세조종이 상대적으로 쉽다. 지난해 국내 증시를 뒤흔들었던 우선주 열풍의 데칼코마니 현상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유 없는 주가 급등은 투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투기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거래소도 최근 일부 스팩 관련주가 이상 급등 현상을 보임에 따라 기획감시에 나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0% 이상 급등한 스팩주는 10종목에 달하며 평균 상승률은 129.8%로 집계됐다. 하루 주가 변동률이 상·하한가(±30%)를 기록하는 종목도 다수 발견됐다.

주요 점검대상은 최근 뚜렷한 이유없이 주가 및 거래량이 급등하고 있는 스팩주 약 20곳이다. 향후 주가 변동 등에 따라 대상 종목 수는 변경될 수 있다.

특히 스팩과 특정 기업 간 인수합병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이를 매매에 이용하는 행위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집중 분석이 진행된다. 주식 리딩, 유사투자자문업자, 주식 카페 등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들을 대상으로도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스팩주들은 뚜렷한 이유 없이 단순 수급에 의해 주가가 상승했는데, 이러한 과열 양상은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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