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시즌 대구 민심 1번지] 정치인들은 대구 왔다하면 왜 서문시장부터 찾는가

  • 민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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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4   |  발행일 2021-07-26 제4면   |  수정 2021-07-27 09:40
박근혜
2012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와 상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영남일보DB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8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구 서문시장이 '선거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범야권 대권 잠룡들이 연일 얼굴을 비추면서다.


지난 20일 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방문에 서문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최근 유례없는 흥행을 거둔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에서도 이 곳은 주 무대였다. 정치인들은 왜 대구에 왔다 하면 서문시장부터 찾는 것일까. 대구를 찾는 정치인들의 또 다른 주요 방문 코스는 어디일까.


이준석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악수를 하는 모습. 영남일보DB
◆이회창·이명박·박근혜부터 이준석까지 찾는 '보수의 성지'
조선 시대 전국 3대 장터로 꼽히던 서문시장이 보수 정치인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1997년 치러진 제15대 대선부터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 전 총재가 서민적 이미지를 위해 시장을 찾았다. 이 전 총재는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상인들은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며 화답했다.

서문시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치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고비가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에 대한 역풍이 불자 세 결집을 위해 서문시장에 방문했고, 2012년 대선 과정에서도 '기(氣)'를 얻어갔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시장을 찾았던 그의 마지막 방문은 4지구 대형화재가 발생한 2016년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정치적 최대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07년 시장 내 '칼제비 골목'에서 칼제비(칼국수+수제비)를 먹었다.
국민의힘 홍준표(대구 수성구을) 의원은 제19대 대선 출정식을 서문시장에서 열어 보수의 적자임을 강조했다. 홍 의원은 이후에도 주요 사안을 발표하거나 민심을 청취하기 위해 시장을 수시로 찾았다.

이처럼 보수 대권 주자들이 서민 이미지를 구축하고 민심을 청취하는 데 서문시장은 큰 역할을 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바른정당 대선후보 시절 서문시장을 찾아 '배신자 프레임'에 정면으로 맞섰다.

서문시장은 국민의힘 당권 주자 사이에서도 '메인 스테이지'였다.
이준석 대표는 6·11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구에서 2주간 상주하겠다"고 선언한 뒤 서문시장을 수시로 찾았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 명절에 대구에 오면 꼭 들르던 곳"이라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대표의 최대 경쟁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도 막판 유세를 위해 시장을 찾았다.
대구 경북(TK) 맹주를 자처하는 주호영(대구 수성구갑) 의원은 서문시장에서 '칼국수 먹방'을 선보였다. 주 의원은 평소에도 시장을 자주 찾는 '단골 손님'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지지율 정체를 지난 20일 대구 방문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 중심지는 역시 서문시장이었다. 시장에는 지지자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단체 인사들이 윤 전 총장의 방문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여권 인사 중에서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서문시장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권 주자이던 2016년 서문시장 4지구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복구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하루가 멀게 서문시장을 찾다 보니, 상인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먹고 사는 게 급한데 정치인들이 몰려들면 오히려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대를 이어 점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불에 타 없어진 4지구 재건축의 경우, 오는 사람마다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면서 "정치인들이 온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 진정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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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의료봉사에 나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영남일보DB


◆요즘 뜨는 방문지는 어디?
대구를 찾는 정치인들이 서문시장에만 방문하는 건 아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과 삼성창조경제단지, 지역 대학 등도 주요 코스다. 방문 장소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중 동산병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필수 코스가 됐다. 야권 인사들은 이곳에서 정부 방역정책에 대해 날을 세웠고, 여권 인사들은 K-방역이라며 추켜세웠다.

동산병원과 가장 인연이 깊은 정치인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안 대표는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지난해 3월 보름간 이곳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며 '의사 안철수'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다음 달 27일 다시 부인 김미경 교수와 동산병원을 찾아 의료봉사에 나섰다.

그는 지난 21일 1년 3개월 만에 이곳을 찾아 문재인 정부의 방역 대책을 두고 "비과학적이고 탁상행정 중심이라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전날(20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동산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코로나 초기확산된 곳이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여당에서) 우한 봉쇄처럼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는 '철없는 미친 소리'까지 막 나오는 와중에 대구 시민들이 상실감이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여권에서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 4월 동산병원 코로나19 예방 접종센터를 둘러본 바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대구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자 20여 일간 상주하며 방역을 진두지휘했다. 정 전 총리는 "국무총리로 15개월 3일 일하면서 그중 3주를 대구에서 보냈다"면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시민들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 다른 시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 창조경제단지도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최근 청년 창업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곳을 찾는 정치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최근 이곳을 찾아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청년 창업자들과 간담회를 했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여기서 개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문시장이 고정적인 코스라면, 나머지 장소들은 방문 성격이나 목적에 따라 다르다. '방문 장소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도록 계산된 것"이라며 "'세대교체'가 화두가 되자 지역 대학 방문 횟수가 많아졌으며 코로나19 하면 상징적인 곳이 동산병원인 것처럼 '상징성'에 의미를 두고 동선을 짜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민경석기자 mea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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