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이름으로 바꿔주세요." 아파트 이름으로 변경되는 대구 버스 정류장

  • 서민지
  • |
  • 입력 2021-07-25 15:47  |  수정 2021-07-29 18:42  |  발행일 2021-07-26 제7면
503100977
대구 일부 지역에서 버스 정류소 이름을 아파트 명칭을 따 바꾸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대구에서 버스 정류소 명칭이 주민 민원으로 아파트 이름으로 바뀌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A씨는 최근 대구시 버스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올라온 정류소 신설과 이전에 대한 공지사항을 보고 혀를 찼다. '본리119 안전센터 1·2' 버스정류소 명칭을 이달 7일부터 각각 '더샵달서센트럴아파트 건너' '더샵달서센트럴아파트 앞'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공공시설 명칭을 딴 버스정류소가 아파트 이름으로 바뀌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달서구청에 문의해봤지만,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청은 25일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버스 정류소 명칭을 돌려달라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집단 민원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성당보성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이 아파트의 이름을 땄던 버스 정류소는 '본리119안전센터'로 바뀌었는데, 지난해 9월 같은 자리에 '더샵달서센트럴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입주민들이 "뺏긴 정류소 이름을 되찾아달라"고 구청에 요구한 것이다. 달서구는 '더샵달서센트럴아파트/본리119안전센터'로 병행 표기를 하려고 했지만, '명칭이 길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결국 정류소 이름은 '더샵달서센트럴아파트'가 됐다.

A씨는 "성당보성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인근 다른 아파트가 버스 정류소 이름을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119안전센터' 이름으로 바꿔줄 것을 2~3년 전 요구했다"라며 "이 명칭이 정식 등록되고 안내도나 안내방송에 반영되기까지는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입주자들의 집단 민원으로 아파트가 준공된 지 불과 7개월도 되지 않아 정류소 이름이 바뀌고 말았다"고 허탈해했다. 또 "버스정류소는 아파트 입주민의 소유물이 아닌 엄연히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시설물로, 공공성을 담아야 한다"라며 "요즘 아파트의 이름은 비슷비슷해 구분도 잘 안 된다. 지역 안전을 책임지는 119안전센터 명칭을 버리고 아파트 이름으로 바꿔달라는 건 전형적인 '지역 이기주의'"라고 했다.

달성군에서도 '옥포이진캐스빌아파트'가 준공되고 2018년 버스정류장 명칭이 '옥포지하차도'에서 '이진캐스빌'로 바뀌었다.

수성구의 '상동우체국' 건너 정류소는 2019년 6월, 우체국이 소규모라서 인지가 어렵다는 민원으로 '수성동일하이빌 정문'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시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도 명칭을 변경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역 공무원들은 "주민 민원이 거셀 경우 사실상 이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입주민들의 요구는 지역 이기주의로 해석되는 '핌피 현상'의 한 형태로 분석된다. 대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소장은 "아파트를 준공할 때부터 입주민 대표가 아파트 상가 광고물 색깔도 정하고, 도로 폭 넓이와 수목에도 관여한다. 매일 다니는 버스 안에서 자기 아파트 이름이 홍보되면 아파트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성용 대구대 부동산·지적학과 교수는 "버스 정류소 명칭을 바꿈으로써 아파트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다만 특정 개인, 특정 집단을 위한 명명보단 공익성을 가질 수 있는 시설을 우선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하철에 비해 버스 정류장 이름 자체가 아파트 가격 상승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 같다. 기존 연구에서도 그런 경우는 아직 없었다. 집값을 올리기 위한 입주민들의 몸부림이 우리 시대 자화상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라고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서민지 기자

정경부 서민지 기자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