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실핏줄 지방은행]〈4·끝〉디지털과 관계형 금융에 길이 있다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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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5 20:27  |  수정 2021-09-16 18:17
지방은행과 지역민-지역기업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해 윈윈 가능
마이데이터 사업자 승인, 메타버스 플랫폼 등 디지털 금융 강화
디지털 전략이 지역고객 소외로 이어지지 않도록 균형도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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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도 지방은행이 존재할까요?" "저희도 선배들처럼 은행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금융이 디지털이라는 급박스러운 환경변화로 인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은행권, 그 중에서도 지방은행은 존립과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의 빠른 성장과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금융 활성화 등은 지방은행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과소평가되는 지방은행 역할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12.1%이던 지방은행의 총자산 시장점유율은 올 1분기 10.9%로 떨어졌다. 지역경제가 침체된 데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영업환경이 악화된 영향이다.


올 상반기 말 카카오뱅크의 자산이 29조9천13억원으로 2019년 말 22조7천241억원 보다 31.6% 증가했다. 이는 지방은행인 광주은행과 전북은행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금융이 무한경쟁 체제로 돌입하면서 규모나 수익성 면에서 시중은행에 뒤쳐지고, 편의성에서 인터넷은행을 따라갈 수 없는 지방은행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게 될까.


전문가들은 지방은행만의 특화된 역할을 대체할 금융기관은 아직까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지역경제 성장과 지역금융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에 따른 영업을 중시하는 시중은행은 지역 중소기업의 사정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시중은행은 경기침체 시 대출기준을 강화함으로써 신용경색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우량기업보다는 영세한 중소기업이 가장 먼저 금융우산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은행은 지역 소재 기업 및 산업과 장기에 걸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지역경제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으면서 최후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당시 지역의 중견기업이 시중은행의 만기 연장을 거부당해 부도위험에 처해 있을 때 대구은행의 대환대출로 위기를 넘긴 일화는 지방은행의 대표적 역할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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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형 금융에 답이 있다
지방은행의 생존 방안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꼽고 있는 것이 바로 '관계형 금융'이다.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은 지방은행과 지역민·지역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관계 속에서 외부로부터 입수하기 어려운 은행 이용자의 신용정보를 취득함으로써 지방은행과 이용자 모두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다.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지며,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를 통해 양자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의 안정적 자금조달을 통한 경영의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고, 창업-성장-성숙 단계별로 적절한 자금공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도 재무·비재무 정보의 활용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고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거래가 가능하다.


또 이러한 관계금융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용과 지급능력이 크게 개선될 수 있는 혁신형 중소기업에 적합한 금융수단이며, 금융기관은 관계금융을 통해 취득한 기업정보로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중소기업 거래가 많은 지방은행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다.


김국현 박사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방은행 역할 강화 방안'을 통해 "외환위기 이후 지역금융 부진의 저변에는 중차대한 지역금융의 역할을 과소 평가한 데 일부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로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했던 일본은 우리나라의 시중은행 해당하는 도시은행을 20여개에서 3대 메가뱅크로 전환했다.


하지만 지방은행은 2003년부터 릴레이션십 강화 프로그램이라는 구조개선책을 추진했다. 지방은행을 도시은행처럼 통폐합이라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경우 지역경제에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은행은 지역기업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권희원 부산은행 노조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시중은행,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문을 열어달라"면서 "국가균형발전적 측면에서도 지방은행 활성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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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금융 고삐죄는 지방은행
지방은행이 디지털 혁신에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DGB금융을 포함해 상반기 실적이 성장한 지방 금융지주사들은 은행을 중심으로 디지털 금융 강화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대구은행은 최근 지방은행 중 세 번째로 마이데이터 사업자 승인을 얻어냈다. 기본적인 자산관리(WM) 서비스뿐 아니라 지역화폐에 위치기반서비스를 탑재한 마이데이터 사업으로 지방금융으로서의 차별화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확보한 대구은행은 올 12월 마이데이터 기반 맞춤형 개인자산관리서비스를 론칭할 예정이다. 올 4월 사업자 신청과 동시에 서비스를 준비해왔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금융정보를 분석해 고객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DGB금융의 메타버스 플랫폼도 주목받는 디지털 전략이다. 경영진 회의를 시작으로 그룹 계열사 대표 회의, 시상식, 사내모임 뿐만 아니라 채용설명회도 성황리에 개최하는 등 다방면으로 메타버스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고 있다.


또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센터나 운영을 통해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사원증 발급사업 등 협업 사업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핀테크 스타트업 뉴지스탁 지분을 인수하고 10번째 자회사로 편입했다.


BNK금융지주는 여신 등에서 비대면 영업을 확대하고 업무에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를 적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또 안면인식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확인 서비스에 대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고 비대면 고객 유입 확대에 나섰다. 영업점에서는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도 은행업무를 볼 수 있도록 QR코드를 활용한 디지털 실명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JB금융 역시 디지털 혁신을 8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삼고 업무 시스템과 고객 서비스 개선에 적용하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를 도입해 전북·광주은행 중심으로 디지털 기반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종이통장 미발행, 태블릿PC를 이용한 서류 작성, RPA 범위 확대 등을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금융과의 조화가 관건
문제는 이 같은 지방은행들의 디지털 전략이 지역 고객들의 소외로 이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빅테크기업에 대한 종속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디지털금융을 앞세워 대구은행 7곳을 포함한 은행권은 올 상반기에만 79개의 지점을 없앴다. 2018년 23개, 2019년 57개였던 지점 폐쇄는 지난해 304개로 절정을 이룬 바 있다. 올해도 2018년과 2019년에 비하면 많은 수치다.


디지털금융에 따른 또 다른 우려는 빅테크 종속화다. 강다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은행과 핀테크 업체 협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플랫폼 갑을 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상품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확보하는 한편, 상품의 낮은 가격 유지를 위해 해당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더업체의 공급단가를 낮추게 된다. 결국 은행은 관계 내에서 '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디지털금융 플랫폼화에 따른 지역자금 유출이나 지역민 소외 지적은 아직까지 실증된 건 없는 상황"이라면서 "디지털금융을 통해 혁신 서비스를 지역민에게 선보이고 잠재고객층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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