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조손가정 (3)...성장기 상처받고 방치된 아이, 마음의 병 앓아…실태조사는 10년째 제자리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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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7   |  발행일 2021-09-17 제35면   |  수정 2021-11-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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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대구 서구의 한 조손가정에서 10대 형제가 자신들을 키워준 친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사건이 발생한 주택의 빨랫줄에 할머니가 깨끗하게 빨아둔 교복이 걸려 있다. 〈뉴스1 제공〉
◆정서·행동 장애로 고통

대구 서부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존속살인 혐의로 고교 3학년 A(18)군과 학교에 다니지 않는 B(16)군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0시10분께 서구 비산동 한 주택에서 흉기로 할머니(77)의 얼굴과 머리, 어깨, 팔 등 전신을 마구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현장을 할아버지(92)가 목격한 뒤 "손자가 흉기로 아내를 여러 번 찔렀고, 아내 옆에 못 가게 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119구급대가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할머니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형제는 다음날인 31일 구속됐으며 경찰은 지난 6일 이들 형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 형제는 각각 7세와 5세였던 2009년 부모가 이혼하면서부터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조부모가 손자들을 극진히 보살폈지만 손자들은 삐뚤어졌고, 심리 및 인지치료까지 받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A군은 중학생 때부터 정서·행동 장애로 아동발달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아왔다. B군은 지난달 교사와 학생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B군은 중학생 때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자녀들 정신적 건강 적신호
비극 맞이한 대구 조손가정 형제
사춘기부터 정서·행동장애 겪어

심리적 박탈, 사회적 반감 되기도
세대차로 인한 갈등 우려도 높아
실태파악 후 지원정책 마련 시급


조손가정의 손자녀들이 성장기 나이에 올 수 있는 정신적 충격과 방치로 건강에 적신호과 켜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장기 아이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분별력이 형성되는 시기지만, 노부모와 어렵게 사는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성향이 다소 저하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성 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상대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정서적 공감이 발달치 못해 항상 위축돼 있게 만들 수 있다. 지역의 정신과 전문의는 "대부분 양육자가 조부모가 되는 경우 아이들에게 수용적이고 다소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데 아이와의 관계에서 권위 체계가 동등한 관계가 돼버리면 아이는 조부모를 군림하려는 성향을 보인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아이들이 적당한 양육적 훈계를 받지 못함에 있어 다소 공격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데 있다. 기력이 쇠한 노부모일 경우 아이들에게 부모만큼의 양육 및 훈계 지침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감정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나아가 아이들 성장기에 사회적 반감이 생기며 가정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지역 한 복지센터 관계자는 "조손가정에서 불우하게 자란 아이들 가운데 정서적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대책마련 절실해"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조손가정에 대한 지원체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정기적인 실태조사가 요구된다. '아동종합실태조사' 등에서 한부모 및 조손가정 아동들이 일반가구에 비해 열악한 가정환경 및 그와 관련된 정서·심리적 박탈감 및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조손가정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실태조사를 근거로 조손가정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책과 복지 서비스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가족필요척도(Family Needs Scale)를 적용하는 등 서비스 대상 발굴과 연계해 서비스 수요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조손가정의 취약성을 충분히 고려한 복지 서비스 전달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손가정은 고령의 조부모와 부모가 부재한 미성년 손자녀로 구성된 가구로 조부모의 부양능력 부족, 질병, 장애 등에 의해 아동이 성장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양육 환경일 우려가 크다보니 조손가정은 신청주의 원칙에 따라 복지서비스가 분배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와 함께 조손가정 발굴에서부터 서비스 수요 조사, 이미 마련된 서비스와의 연계 등을 위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특히 청소년 손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조손가정은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 발생의 우려가 높고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녀의 욕구 등을 충족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으므로 청소년 프로그램 등에 대한 안내 및 복지 서비스 연계가 마련돼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은 "국내에서는 2010년 이후 조손가정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조손가정 규모 및 수급 현황 이외의 사항이나 부모를 대신해 아동을 돌보고 있는 친족 양육 가정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파악이 어렵다"며 "'아동종합실태조사' 등에서 한부모 및 조손가정 아동들이 일반가구에 비해 열악한 가정환경 및 그와 관련된 정서·심리적 박탈감 및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조손가정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조손가정 실태조사를 근거로 조손가정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책과 복지 서비스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고령인 조부모의 부양능력 부족, 질병, 장애 등에 의해 아동이 성장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양육 환경일 우려가 크고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녀의 욕구 등을 충족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조손가정의 취약성을 충분히 고려한 복지 서비스 안내 및 연계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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