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이인상 '송하수업도'…소나무 그늘 아래 대면수업…새삼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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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5   |  발행일 2021-10-15 제37면   |  수정 2021-10-1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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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 '송하수업도'. 종이에 엷은 색, 28.7×27.5㎝. 개인 소장.

첫 수업은 늘 진지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집중하는 학생들을 보면 나도 숙연해진다. 미술 실기는 시범을 보여주고 이론을 곁들이는 수업이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상상력을 자극해준다. 즐거운 수업에 칭찬이 빠질 수 없다. 양념을 치듯 칭찬을 듬뿍 친다. 학생들의 호기심이 수업에 열기를 더한다. 수업은 선생과 학생의 호흡이 일치할 때 최대치의 효과를 낸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한 지 벌써 4학기째를 맞았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미술 실기를 가르치다 보니 격주로 대면 수업을 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서로 얼굴을 보며 가슴으로 느끼는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능호관 이인상(李麟祥·1710~60)의 '송하수업도(松下授業圖)'에서 제자와 스승이 주고받는 수업의 귀중함을 새삼 느낀다.

이인상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현손이다. 그의 증조부가 서얼이었기에 그도 서얼 신분으로 하급관리로 전전했다. 가난하였지만 명문가의 후손답게 학문에 매진하여 명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서예와 그림, 전각, 시문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송하수업도'는 스승과 제자가 자연 속에서 수업하는 장면이다. 소나무 둥치에 상처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인상의 굴곡진 삶을 보는 듯하다. 병풍 같은 바위를 배경으로 덩굴이 나무를 타고 드리워져 있다. 싱싱하던 나뭇잎이 한풀 꺾여 단풍이 들기 직전이다. 너럭바위 주위에는 국화가 피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스승과 제자가 자리를 잡았다. 사방관을 쓴 스승은 책을 보며 강의 중이다. 종이를 펼쳐놓고 엎드린 제자는 스승의 말을 놓칠세라 귀를 세워 듣고 있다. 펼쳐진 종이 옆에는 먹과 벼루, 연적이 놓여 있고 국화꽃도 한 송이 있다. 수업 중에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일까. 적황색의 주전자와 찻잔을 준비해두었다. 주전자에는 국화차 향이 피어오른다.

'송하수업도'는 서예에 출중했던 이인상의 필력이 발휘된 호방한 그림이다. 인물의 옷 주름으로 인체의 특징을 포착했다. 풀과 나무는 선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그림을 깊게 한다. 이인상의 꼿꼿한 성격답게 담백하고 격조 있는 문인화 화풍은 국화처럼 은근하다.

야외수업에 이어 시선을 실내로 옮겨보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서당'은 실내에서 하는 수업을 보여준다. 여러 마을에서 모인 아이들이 신분에 상관없이 훈장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훈장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둥글게 둘러앉았다. 그런데 훈장 앞에 한 아이가 불려 나왔다. 호기심 가득한 학동들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이는 꾸중을 들었는지 뒤돌아 앉아 훌쩍인다. 그의 책장은 펼쳐져 있지만 내동댕이친 상태다. 학동들은 어린아이부터 갓을 쓴 어른까지 각양각색이다. 오른쪽에는 나이 순서대로 다섯 명의 학동이 있다. 왼쪽에 있는 세 명의 학동들은 우는 아이를 보는 중이다. 아이들의 표정이 개구지다. 훈장의 표정도 근엄하기보다는 인자한 모습이다. 훈훈한 수업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배경을 생략한 채 오로지 인물에만 초점을 맞췄다. 서민들의 생활상을 세심하게 기록하듯이 나타낸 것이 그의 풍속화의 특징이다. '서당' 역시 자세한 서당 안의 묘사가 없이도 이곳이 실내임을 알 수 있다. 특유의 은근한 해학미가 수업을 기분 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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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가르침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인상의 '송하수업도'가 야외에서 수업하는 광경이라면, 김홍도의 '서당'은 방 안에서 펼쳐지는 수업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배움은 때가 있다지만 배우려고 마음 먹을 때가 바로 시작이다. 수업에 특별한 장소가 없듯이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끝도 없다.

실내에서 진행되는 나의 미술 실기수업은 교내 풍경을 그리는 야외수업으로 종강한다. 교실에서 조용하던 학생들은 바깥에 나가면 생기가 돌고 활기차진다. 한 번씩 갖는 야외수업은 자연의 생기만큼이나 생생한 수업 결과를 얻는다.

삼십 중반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경험에 비춰 수업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학생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게 북돋운다. 이번 학기는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번갈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코로나19를 물리칠 만큼 열정적이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하늘처럼 높다.
김남희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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