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헤이 마마, 배틀을 시작하지

  •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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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1   |  발행일 2021-10-21 제22면   |  수정 2021-10-21 07:20
책+대결 뜻 '비블리오 배틀'
5분간 줄거리나 감상 낭독
청중 투표로 '챔피언 책' 선정
멸종 위기 처한 독서 생태계
서평 배틀 시도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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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제일 좋아하는 일렉트로니카 DJ는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였고 그 음악 중에서도 언제나 'Play Hard'였다. 신 콜(Syn Cole)과 아비치(Avicii)의 'Miami 82'가 나온 2013년 이후 아비치와 데이비드 게타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데이비드 게타였다. 그것은 2014년 여름, 스페인 이비자 섬의 우수아이아 호텔 야외 클럽에서 'Play Hard'의 디제잉을 직관한 이래로 더욱 그랬다. 그러나 올해 그 순위는 'Hey Mama'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노제가 이 음악으로 메인 댄서 선발을 위한 경연을 펼친 이후였다.

노제의 웨이비 크루는 가장 먼저 탈락했지만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헤이 마마 안무를 따라 하고 그녀는 팬덤에 앉게 되었다.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이 휩쓸고 지나가면 사람들은 처음엔 순위에 관심을 가지다가 참가자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고 그들의 음악이나 춤을 주목하게 되고 그들의 직업을 동경하게 된다. 소외되어 있던 한국의 힙합 신이 순식간에 주류 문화로 올라온 것도 2012년 '쇼미더머니'가 탄생한 이후다.

이것이 문학에 적용될 수도 있을까. 모종의 배틀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책이 소개되고, 그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작가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되는 그런 선순환은 어떨까. 장강명은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에서 한국의 독서 생태계에 대해 멸종 위기종의 서식지 같은 형세가 아닐까 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 중의 하나로 '독자들의 문예 운동'을 제시하면서 '비블리오 배틀'을 언급한다.

그것은 책을 뜻하는 비블리오(Biblio)와 대결을 의미하는 배틀(Battl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2007년 인공지능 연구자인 다니구치 다다히로가 '인간의 뇌는 말하지 않으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뇌 과학의 연구 성과를 활용해 공부 모임을 재미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각각 재미있게 읽은 책을 준비하고 제한 시간 5분 안에 책의 줄거리와 감상 등을 낭독 형식으로 발표한 후에 청중 전원이 3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투표해 '챔피언 책'을 정한다.

2018년 MBC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임하룡, 이동진, 최민용 등의 셀럽이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책과 책에 얽힌 사연을 제한 시간 5분 안에 발표하면 토론 후 100인의 판정단 투표로 '챔피언 책'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아쉬운 것은 책의 해 기념사업으로 시행된 1회짜리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서평 배틀이 엠넷의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장강명의 르포르타주에 언급된 것도 지역 단위의 프로그램이다. 2021년 10월13일 화성시문화재단 도서관에서 시민 대상 서평 게임 '제1회 비블리오 배틀'의 예선이 개최되었다. 방식은 위에 소개한 것과 같고 최종결승은 11월13일이다. 이것이 확산되고 하나의 문화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지돈의 첫 번째 단편집 '내가 싸우듯이' 중 첫 번째 단편 '눈먼 부엉이'에서 장은 묻는다. "문학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나요?"

나는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계가 문학을 구원해야 할 때이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구원된 문학이 충만한 세상이라면 나는 어디서든 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고, 그곳이 어디든 푸코가 말했던 헤테로토피아가 될 것이다.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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