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그림 속에서 사람살이 길을 묻다

  •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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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8  |  수정 2022-01-28 08:28  |  발행일 2022-01-28 제면
산신으로, 익살꾼으로…한민족과 희로애락 함께한 '설화 속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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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호도,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다. 때를 맞춰 호랑이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풍성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임인년 맞이 호랑이'전이 개막했다. 18점의 호랑이 그림 중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호랑이 작품 11점이 포함돼 있다. 매년 그해에 해당하는 띠 동물에 관한 전시를 해온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호랑이 나라'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그밖에도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호랑이전이 열려 관람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의 왕'으로 꼽히는 호랑이는 한반도를 주름잡으며 숱한 설화의 주인공으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에 그 모습이 있는가 하면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한다. 호랑이는 용맹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았다. 산신과 함께 불교의 '산신도(山神圖)'에 자리를 잡고서 우리 삶을 수호한다. 호랑이가 우리 옛 그림의 일종으로 정착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의 영향이 컸다. 한 미술사가는 "명대 호랑이 그림은 1592년 임진왜란 전후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정병모)고 했다. 16세기 말 중국에서 건너온 호랑이 그림은 화가들의 기량을 시험하다가 까치와 만나서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는 까치호랑이 민화로 신토불이화되었다.

대나무 아래 근엄한 자태 '죽하맹호도'
인간사 여러가지 죽음 묘사 '감로탱화'
산신 수호하는 듯한 '산신과 호랑이'

용맹하고 두려운 존재로 비유된 호랑이
조선 후기 민화에선 웃음·해학 담당
토끼와 함께 등장해 사회부조리 풍자


◆수렵도와 감로탱화 속 야생의 호랑이

인간은 종교와 더불어 예술작품을 남기며 삶을 영위해왔다. 사람들은 동굴벽화에 그림으로 염원을 담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사람살이를 생생하게 묘사해 내세의 부귀영화를 기원했다. 그중 무용총의 현실 서쪽 벽면에 그려진 '수렵도'는 고구려인의 기상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드넓은 평원에서 네 명의 기마무사가 벌이는 사냥 장면이 호쾌하다. 무사들은 말을 탄 채 사슴·토끼 등의 짐승을 쫓는다. 그 중심에 화살을 피해 달아나는 호랑이가 있다. 화가의 힘찬 필치가 인물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호랑이의 날렵한 동작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호랑이는 불교회화인 '감로탱화(甘露幀畵)'와 '산신도'에도 등장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토는 피폐해지고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 수없이 많았다. 나라에서는 백성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영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수륙재(水陸齋)'를 지냈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행한 감로탱화는 인간사의 여러 가지 죽음을 묘사하고 있는데 호랑이에게 물린 인간을 그린 장면도 있다. '호환(虎患)'이란 말이 있듯이 호랑이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렇다고 호랑이가 두렵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다.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기우제(祈雨祭)를 지낼 때 호랑이를 제물로 사용한 기록도 있다. 호랑이 머리를 강에 던지면 용이 놀라서 승천을 하며 비를 내리게 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또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나쁜 기운을 몰아냄)의 기능이 있어 부적의 역할도 했다. 사람을 위협하던 호랑이는 산신을 만나 수호신으로 변신한다.

◆산신도와 김명국의 신령한 호랑이

산신각이나 칠성각에 모셔진 산신도는 산신이 호랑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다. 산신도의 하나인 '산신과 호랑이'는 붉은 옷을 입은 산신이 눈에 확 들어온다. 흰 부채를 든 산신 옆에 눈을 부라린 호랑이가 정면을 향해 엎드려 있다. 산신의 '애견'쯤 되는 듯하다. 아니 '애호(愛虎)'가 되겠다. 용맹스럽지만 산신을 수호하는 것 같다. 엎드린 호랑이는 꼬리를 세우고 있다. 근엄하지만 민화 속의 호랑이와 '조형적인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산신도임에도 친근감이 드는 이유는 재미있는 표정의 호랑이 때문이다.

산신도의 또 다른 면을 채택한 호랑이도 있다. '달마도'로 유명한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1600~1662 이후)의 '풍간(豊干)과 호랑이'가 그것이다. 우리에겐 생소한 미국 하버드 새클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형작품이다. 호랑이를 대동하고 배를 드러낸 선사가 주장자를 짚고 길을 가고 있다. 시원시원한 필치에 활력이 넘친다. '풍간과 호랑이'는 선승화(禪僧畵)의 대가인 김명국의 솜씨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배불뚝이 선사는 전설적인 괴승 '풍간'이다. 풍간은 '한산' '습득'과 함께 삼성(三聖)으로 불린다. 풍간은 외출할 때마다 덩치가 큰 호랑이를 타고 다녀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호랑이가 자가용이었다. 호방한 붓질로 쓱쓱 그린 호랑이의 날렵한 모습은 걷는 호랑이 특유의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선사의 눈빛은 기운이 넘치고, 옷자락은 노련한 필선으로 날아갈 듯하다. 호랑이의 용맹함도 선사와 같은 필치로 그렸다. 그들의 시선은 피안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왼쪽에 '연담'이라는 호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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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임희지 '죽하맹호도', 비단채색, 91.0×34.0㎝, 19세기 초, 개인 소장

◆사실적인 체형의 군자 같은 호랑이

용맹한 호랑이는 곧잘 군자에 비유된다. 이때 호랑이는 소나무·대나무와 함께 나타난다. 이런 호랑이 그림으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그리고 작자 미상의 '맹호도(猛虎圖)'가 전한다. 그중 '죽하맹호도'의 호랑이는 대나무 아래에서 호랑이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다부지다. 그림 오른쪽 위에 조선 후기 문신 능산(菱山) 황기천(黃基天·1760~1821)의 제발이 있다. "조선의 서호산인이 호랑이를 그리고 수월옹이 대나무를 그리다(朝鮮西湖散人畵虎 水月翁畵竹)"는 평이다. 김홍도가 호랑이를 그리고 수월헌(水月軒) 임희지(林熙之·1765~?)가 대나무를 그린 합작품이다. 임희지는 한역관(漢譯官)으로 중인 출신이다. 그는 화원화가 김홍도와 함께 중인 출신 문인의 모임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임희지는 난과 대나무를 잘 그렸다. '죽하맹호도'는 대나무 그림이 빼어난 임희지가 윗부분을 살렸고 김홍도가 호랑이를 위엄있게 모셨다. 바위를 배경으로 대나무가 위로 뻗어 있다. 아래로 뻗은 잔가지는 이파리가 기름처럼 반들거린다. 호랑이는 눈을 번뜩이며 앞으로 전진하는 자세다. 백수의 왕답게 수려한 자태가 근엄하기까지하다. 검은색 줄무늬에 황금색 털이 호랑이의 몸을 실감나게 한다. 김홍도의 기량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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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화가

◆검은 호랑이와 신토불이 까치호랑이

근엄하던 호랑이는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익살꾼으로 거듭난다. 서민에게 인기 있는 민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호랑이는 토끼나 까치와 환상의 커플을 이루며 웃음과 해학을 담당한다. 권세가의 배역을 담당하여 민초의 대변인인 토끼와 함께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거나 담배 피우는 캐릭터로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우리 옛 그림 중에는 드물지만 검은 호랑이도 있다. '흑호도'는 외모가 '까치호랑이'이 계열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호랑이 가운데 임인년의 스타답게 관람객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자세는 김홍도의 '죽하맹호도'에 보이는 호랑이의 포즈 그대로다. 강렬한 눈빛 대신 큰 눈망울이 천진하게 변했다. 발톱을 숨기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얼핏 해학적이기까지하다. 꼬리는 하늘로 치켜세워 강인함을 과시한다. 두 마리의 까치가 호랑이를 보고 있다. 현재 일본 구라시키민예관 소장인 '까치호랑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민화 스타일이다. 역시나 벽사의 기능을 가진 호랑이와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가 쌍을 이룬다. 이 '까치호랑이'는 굵은 먹선으로 넓은 바위를 배치하고 바위 뒤에서 소나무를 휘어지게 그렸다. 아래로 뻗은 가지에 까치가 앉아 있다. 바위 위의 호랑이는 고개를 뒤로 돌려 까치를 바라본다. 위엄과는 거리가 먼 아주 경쾌하고 친근한 표정이다. 커다란 눈에는 눈동자가 두 개씩 박혀 있다. 모두 네 개인 눈동자가 다이아몬드처럼 번쩍인다. 입을 벌린 모습이 무섭기보다 천진하다. 까치호랑이는 서민들의 애환과 바람을 해학적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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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풍간(豊干)과 호랑이'. 종이에 먹, 319.0×430.0㎝, 17세기, 하버드 새클러박물관 소장.

◆검은 호랑이를 타고 난세를 슬기롭게 건너기

우리 민족에겐 호랑이가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호랑이는 한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임인년을 맞아 다시 호랑이를 품어본다. 야생의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수렵도의 호랑이처럼 날렵하게 난세를 건넜으면 한다. 또 군자 호랑이처럼 진중하고, 까치호랑이처럼 해학적으로 비대면 상황을 이겨내는 한 해를 꿈꿔본다.
김남희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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