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제20대 대통령 당선인에 바란다] 리더십 발휘하는 국격(國格)있는 외교 필요

  •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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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0 10:04  |  수정 2022-03-11 09:26
한국외대 강준영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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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강준영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전 세계가 공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3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위세가 여전하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군사 침공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공격으로 현실이 됐고,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를 둘러싸고 세계가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여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둘러싼 자국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 외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불안한 대내외 환경
한국의 지정학적 어려움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지만, 한반도의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며 이미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 있고, 서쪽으로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대결도 불사하는 중국이 있다.
동쪽으로는 세계 경제 3위의 일본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옛 소련과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면서 미·중 양자 구조를 미·중·러 구도로 바꾸려는 러시아도 존재한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미래 5년의 대한민국을 이끌 조타수를 뽑는 대선을 치렀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우호적이지 못하다. 국내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과 사회통합이 급선무다.
대외적으로는 다자적 협력이 필요한 북한 비핵화, 미·중 갈등 사이에서의 운신의 폭 확보, 한·중 관계에서 돌출된 '반중' 감정 문제의 해결 그리고 여전히 감정적 평행선을 달리는 대일 관계 회복과 더불어 최근 군사 안보 이상으로 중요성이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른 '경제 안보' 대응 등은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대외전략을 요구한다.

◆북한에 주도권마저 내준 한국외교
본래 외교란 한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국제 사무 활동이며 고도의 협상을 통해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 철저히 실리적인 행위다. 이 점에서 지난 5년 한국 외교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정권 말기에는 북한에 주도권마저 내주는 모양새가 됐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운 미·중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태도는 양측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했고, 일본과의 관계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원자재 수급 등에 불안이 조성된 경제 안보에도 능동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새 정부는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실책을 철저히 분석해 미래 한국 외교의 반면교사로 삼고,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외교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좌초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우선, 남·북 간 직접 소통에 초점을 맞춰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추진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좌초했다. 특히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사이 북한은 핵과 미사일 전력을 고도화했고, 올 들어서만도 아홉 차례나 미사일 실험 도발을 일삼고 있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중재에도 실패하고 군사력만 증강했다'면서 우리 정부를 책망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해석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편협한 외교관 때문이다.

◆상처 입은 한미 관계
둘째, 미·중 갈등 국면에서 좌표 설정에 실패했다. 미·중 갈등이 무역 경쟁을 넘어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와 가치 전쟁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선택의 기로로 몰리는 어려움을 겪었다.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과의 교류가 중요한 우리 입장에서 당연히 선택의 폭이 크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신뢰가 상처를 입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선택적으로 양측을 설득하고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노력이 부족했다.

◆할 말은 하는 대중(對中)외교 필요
셋째, 현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친중(親中)·반중(反中)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한국 정부가 양자 간 경제 교류의 중요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대한 지나친 기대의 합작품이다. 이런 분위기가 확대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 눈치 보기가 진행됐던 것이 문제다.
이에 중국은 한국의 대미(對美)경사 저지와 한미일 삼각 협력 구도의 와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과의 친선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강변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 인식은 크게 악화됐고, 이는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일 관계 돌파구 마련에도 실패
넷째, 대일 관계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강제징용·위안부 등 한·일간 역사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감정 대립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주,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 북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에 일정한 공동보조가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미·일 삼각 협력 구도가 역사 문제로 인해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서로 상대방 탓을 하고 있으면 상처만 깊어진다. 역사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현실적인 협력을 적극 도모하는 투 트랙 전략이 아쉽다.

◆큰 상처 입은 한국 외교
이렇게 볼 때 현 정부의 5년 외교 정책은 국익 극대화를 위한 실리 외교를 주창했으나, 대북 정책이나 국제 환경 인식에 대한 원칙적인 접근이 부재했다.
오히려 감정적 당위성과 이념·도덕적 접근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기에 정부 기조와 세부 정책 간의 엇박자,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물론 전문 인력의 적절한 배치마저 이뤄지지 않아 갈등 조정 능력 부족 문제에 시달렸다. 때문에 한국 외교는 큰 상처를 입었다.

◆분명한 외교 원칙 설정해야
잘못 된 것은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고래싸움에 고민하는 새우가 아니다. 세계 9위권의 경제력과 21세기 세계 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한류 원조국인 한국이 스스로를 왜소화하면서 모호한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면서 우리의 독자적이고 분명한 외교 원칙을 설정해야 한다. 여기에 미·중은 물론 북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제 이슈 선점과 국제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격(國格)있는 외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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