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바둑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 "인공지능과 전재산 건 대결? 3점 놓고 두면 무조건 이길 자신 있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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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2 17:00  |  수정 2022-03-23 07:30
신진서
신진서 9단이 한국기원 3층 회의실에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세계랭킹 1위 프로바둑 기사 신진서 9단이 인공지능과의 '내기 바둑'을 둔다면 3점을 놓겠다고 했다.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신 9단은 "전 재산을 걸고 둔다면 인공지능에 3점을 놓겠다. 100% 이긴다는 것은 아니고 이길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보다 약한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너무 강하다"고 밝혔다. 춘란배와 LG배에서 우승하며 세계대회 2관왕에 오른 신 9단은 올해 한·중·일 바둑삼국지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4연승으로 한국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7점 놓으면 '즐겁게' 두실 수 있을 겁니다. 저한테 쉽게 지지는 않으실 겁니다." 타이젬 바둑 4단에 랭크돼 있는 아마추어 바둑애호가로서 굉장히 궁금했다. 도대체 몇 점을 '깔면' 세계랭킹 1위의 프로바둑 기사와 승부가 될 것인지. 신진서(22) 9단은 엷게 웃으며 7점을 제시했다. '정석'으로만 둔다는 단서를 달았다. 세계 최고의 '수읽기'를 자랑하는 신 9단이 날카로운 수로 마구 흔들어 댄다면 아무리 7점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7점은 신 9단의 배려가 담긴 접바둑 치수이다.


신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이다. 바둑이 인공지능에 정복당한 지 꽤 오래됐다. 지난 2016년 당시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1대 4로 패했다. 요즘 프로바둑 기사는 인공지능을 참고서로 삼아 공부한다. 신 9단은 인간으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수를 두면서 신공지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최근 신 9단은 천하무적이다. 지난해 춘란배와 LG배를 연달아 우승해 세계대회 2관왕에 등극했고, 한중일 바둑삼국지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4연승으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농심배 한국 2연패의 주역이다. 신 9단은 지난해 농심배에서 5연승으로 한국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박정환 9단과 함께 일찌감치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대표로도 뽑혔다. 바둑계에서 가장 '핫'한 신 9단을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나.
"인공지능이랑 가장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라 당연히 좋다. 인공지능이랑 가장 비슷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좀 있다."


▶ 중국 커제 9단의 '화장실 발언'을 듣고 어땠나. (중국의 1인자 커제 9단은 올해 농심배에서 신 9단에게 완패한 뒤 중국판 유튜브 빌리빌리(bilibili)를 통해 '지인의 전언'임을 전제로 "신진서는 나의 77번째 수를 본 뒤 착점하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 상대가 두기 전 다녀와야 하는 규칙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신 9단의 치팅(cheating)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처음에는 커제 9단이 중국 팬들을 위한 방송을 했겠거니 생각을 했다. 지게 되면 중국 팬들한테 쓴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데, 변명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을 한 것 같은데, 질이 좀 안 좋았다. 일류기사라면 말의 무게감이 다르다. 예전에는 라이벌 기사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신 9단은 농심배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명 기사일수록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중국 팬들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며 커제 9단을 향해 '점잖게' 충고하기도 했다. 신 9단의 의연한 태도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신 9단은 한동안 바둑 매너가 좋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어렸을 때 승부욕이 강해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안 좋은 습관들이 있었습니다. 바둑을 둘 때 조절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바둑을 안 둘 때라도 매너를 항상 좋게 하자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커제 9단이 세계랭킹 1위였던 시절 신 9단을 무시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커제 9단은 신 9단보다 3살 많다.)
"그때 커제 9단이 동급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화는 나지 않았는데, 이겨서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세계대회 결승에서 커제 9단에게 지고도 바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박정환 9단이라든지, 이창호 사범님처럼 겸손하게 인터뷰를 했으면 존중했을 것이다."


신 9단은 2019년 제4회 백령배, 2020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서 커제 9단에게 패했다. 신 9단은 "커제 9단이 백령배 결승에서 왜 돌을 던지지 않느냐는 식으로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커제
중국의 커제 9단이 농심배에서 신진서 9단과 대국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최근의 승부 흐름을 보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올해 한국 기사들에게 몇 번 졌다. 중국 선수들에게는 한 번도 안 졌다. 중국 기사와 대국할 때 모든 걸 다 쏟아붓기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성적이 잘 나는 것 같다. (승부에 대한) 간절함도 제일 크지 않나 생각한다."


▶세계랭킹 1위인데, 간절함은 어떤 의미인가.
"올해 들어 비로소 세계랭킹 1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랭킹 1위 소리를 들으면 약간 부끄러웠다. 세계대회 우승 경력이 너무 약했다. 지금은 세계대회 우승을 3차례 했고, 농심배 우승도 있기 때문에 세계랭킹 1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커제 9단은 세계대회에서 8회 우승했다. 이창호 9단은 21회, 은퇴한 이세돌 9단은 18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기풍은 어떠한가.
"일단 이기는 바둑을 두는 편인데, 선택권이 있을 때 항상 전투 쪽으로 가는 것 같다."


▶프로기사들은 유리하다 싶으면 모험을 하지 않는데 신 9단은 상대를 부러뜨린다는 인상을 준다.
"수가 보이면 두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안전하게 뒀을 때 승률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집 바둑으로 간다고 해서 100% 이기는 게 아니다. 선택권이 있으면 계가 바둑으로 가지 않고 끝내는 길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대회를 3개 꼽는다면.
"2020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와 2020년 LG배, 2022년 농심배다. 삼성화재배에선 마우스 미스의 영향으로 커제 9단에게 우승컵을 내줬고, LG배는 세계대회 첫 우승이었다. 올해 농심배에선 중국 미위팅 선수와 재대국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20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1국에서 신진서는 마우스 오작동으로 패하는 아픔을 맛봤다. 2020년 LG배에선 4강에서 커제 9단을 이기고, 결승에서 박정환 9단을 제압했다. 신 9단은 당시 박정환 9단과의 대결에 대해 "운이 좋았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신 9단은 올해 LG배에서 중국의 양딩신 9단을 꺾고 2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았다.


▶양딩신 9단과의 LG배 결승 1국에서 초반 많이 불리해 이기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었다.
"LG배 직전에 삼성화재배에서 박정환 9단에게 패해 더 이상 준우승은 안 된다는 각오로 대국에 임했다. 양딩신 9단이 막판에 착각을 해서 운 좋게 이겼고, 결국 우승까지 하게 됐다. 세계대회 결승이라 양딩신 9단이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실 결승에서는 별 게 다 걱정이 된다."


▶농심배에선 중국의 미위팅 선수와 재대국 끝에 승리했다. 첫판 시간승이 무효로 처리됐는데.
"팩트만 이야기하면 서로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 재대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려고 하는 순간 일본 기원에서 이미 재대국 판정을 내렸다. 당시 판세가 50대 50의 박빙이었는데, 사실 끝까지 두면 이겼을 것이다. 재대국이 결정이 나면서 무조건 이겨야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고, 승리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농심배에 출전한 나머지 동료 선수들이 우승이 결정되고 무슨 말을 했나.
"고생했다고 말하더라. 고맙다고 한 선수도 있었다. 사실 농심배에서 좀 부진했는데, 지난해 농심배에서 5연승으로 올해 4연승으로 우승을 결정지어 마음의 부담이 좀 덜어진 것 같다."


▶하루에 바둑 공부는 어느 정도 하나.
"시간으로 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에는 10시간씩 했는데, 지금은 6시간 정도 한다. 인공지능과 두면서 공부를 한다. 카타고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포석, 중반, 끝내기 가운데 가장 어렵다고 여겨지는 분야는.
"끝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초읽기에 들어가면 아직도 정신을 잘 못 차린다. 모든 기사들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끝내기가 강한 기사라도 초읽기가 시작되면 힘들어 한다. 끝내기에서 실수하면 만회할 수 없어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끝내기가 제일 무섭다."


▶바둑을 둘 때 몇 수 앞까지 보나.
"개인적으로 다섯 수라고 말하고 싶다. 필연적인 곳에서는 30~40 수도 읽을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변수가 있으면 다섯 수 이상을 내다보기 어렵다."
신 9단에게 '다섯 수'는 가장 효과적인 착점을 의미한다.


▶전 재산을 걸고 인공지능과 대결하다면 어떻게 두겠나.
"3점을 놓겠다. 2점에는 절대 못 건다. 3점을 놓고 두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다. 100% 이긴다는 것은 아니고 이길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보다 약한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너무 강하다. 인공지능은 실수가 없을 뿐아니라 판단이 100% 정확해 인간과 차이가 너무 난다.


▶앞으로 어떤 기사가 되고 싶나.
"한국의 1인자를 하셨던 분들을 보고 많이 배운다. 조훈현 사범, 이창호 사범, 이세돌 사범, 박정환 사범이 어떤 생각을 갖고 바둑을 뒀는지, 또 바둑 끝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배우고 있다. 배움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할려고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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