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광주인권상을 위한 고언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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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0   |  발행일 2022-05-20 제22면   |  수정 2022-05-20 07:13
광주인권상 제도 정비 필요
국제사회에 이름 알렸지만
광주정신 오롯이 담지 못해
적합한 후보 발굴·정밀심사
시민의 잔치로 만들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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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5월 항쟁의 뜻을 기리고 민주·인권의 가치를 세계시민사회와 함께 나누자며 만든 광주인권상이 어느덧 스물두 해째를 맞았다. 올해는 버마의 소수민족 까렌 출신 의사 신티아 마웅(Cynthia Maung·63)이 그 명예를 안았다. 1985년 랭군의과대학을 마치고 신티아는 1988년 민주항쟁에 참여한 뒤 타이 국경으로 빠져나와 오두막병원 매따오를 차렸다. 그로부터 신티아는 국경 의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까렌 주민과 소수민족해방군, 민주혁명군, 불법 이주 노동자를 보듬는 길고도 험한 길을 걸어왔다.

나는 1990년 초 버마전선 취재 때 지뢰를 밟은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전사를 자동차에 태우고 처음 매따오병원을 찾았다. 의료 장비도 마땅찮은 오두막에서 홀로 환자를 돌보던 땀투성이 신티아, 참 아름다웠던 그 모습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소수민족 해방과 민주 혁명에 작은 힘이나마. 나는 평생 이들과 함께할 거예요."

그날 수줍음 타던 신티아는 기어이 약속을 지켜냈고, 오늘도 든든한 국경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그사이 타이-버마 국경 매솟 언저리에 자리 잡은 매따오병원은 버마 안팎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제 제법 병원다운 모습을 갖췄다. 올해 광주인권상은 '의료전사' 신티아의 현장 투쟁 33년을 보상한 셈이다.

내친김에 오늘은 청년기에 접어든 광주인권상을 되돌아볼까 한다. 그동안 광주인권상은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아직은 사회운동 분야에서만 눈길을 받을 뿐 대중성을 얻지 못한 한계를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 본질적인 문제는 광주인권상의 흐릿한 정체성 탓이 아닌가 싶다. '시민'이 '현장'을 지킨 '투쟁'이라는 5월 광주의 체험과 정신에서 비롯된 역사성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정체성 문제는 수상자의 적합성 논란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컨대 명성을 좇아 샤나나 구스망(2000년) 전 동티모르 대통령이나 아웅산수치(2004년) 전 버마 국가고문 같은 정치인을 수상자로 뽑았던 게 그 좋은 본보기감이다. 그 결과 광주인권상은 샤나나의 권력투쟁으로 빛이 바래기도 했고, 버마 정부의 소수민족 로힝자 박해에 책임을 물어 2018년 아웅산수치의 수상을 철회하는 촌극을 빗기도 했다.

으레 인디아 마니풀의 시민운동가 이롬 차누 샤밀라(Irom Chanu Sharmila·2007년)와 버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민꼬나잉(Min Ko Naing·2009년)처럼 목숨 건 현장 투쟁가들이 광주인권상을 빛내긴 했지만, 그 나머지는 거의 모두 인권 관련 직업 운동가나 비정부운동NGO 활동가 같은 옆구리 지원자들이 상을 차지하며 적합성에 의문을 남겼다.

"광주인권상은 '상금 사냥꾼'들 과녁이다." 국제사회에 나도는 비아냥거림을 귀담아 들어볼 만하다. 상의 권위란 건 수여자가 아니라 수상자가 결정한다. 광주인권상 수상자의 적합성을 따져 묻는 까닭이다.

광주인권상위원회의 제도적 정비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적합한 후보 발굴을 위한 '국제추천인단'과 정밀한 심사를 위한 '검증위원회' 설치가 그 고갱이일 듯. 지금처럼 원칙 없이 자천타천 후보가 달라붙고, 몇몇이 앉아 검증하고, 형식적인 심사위원회를 거치는 꼴로는 성년 광주인권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다른 말로 '그들만의 잔치'를 끝낼 때가 됐다는 뜻이다. 시민의 잔치로 만들어가는 광주인권상을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본디 광주인권상은 시민의 몫이니까.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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