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가 걸어온 길] 검사·당대표·대권후보…좌절 모르는 '부도옹'

  • 민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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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2   |  발행일 2022-06-02 제4면   |  수정 2022-06-02 06:48

"모래시계 검사가 대구시장이 됐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의 인생은 가히 '부도옹(不倒翁·오뚝이)'이라 불릴 만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았다. 정치를 하면서도 줄곧 비주류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보수정당 대표와 대선 후보 등을 지내며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두 번째로 대권에 도전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2030 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그런 그가 '키워준 고향' 대구에서 시장 자리에 오르며 다시 한번 일어났다.

홍 당선인은 1953년 경남 창녕 남지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었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6년 동안 5곳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다. 이 과정에서 처음 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신천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로 전학을 오면서다. 이후 신암초등을 다니다가 다시 창녕으로 돌아갔고, 졸업은 합천 학남초등에서 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대구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구로 유학을 왔고, 영남중·고를 다니며 6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던 중 홍 당선인을 검사의 길로 접어들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비료 절도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이때 그는 검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뒤 고려대 법대에 합격한다. 이후 사법고시에 네 차례 낙방한 끝에 1982년 합격했다.

홍 당선인은 검사가 되고 나선 강골 검사로 성장했다. 1988년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 사건을 수사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 전기환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1992년 김영삼 정부 때는 5공 실세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하며 일명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5년 검찰을 떠난 그는 이듬해 YS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서는 '김대중 저격수'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 홍 당선인이 정치권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 건 이명박 정부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추대되면서다. 2011년에는 당 대표의 자리에도 올랐으나 악재가 겹치며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12년엔 총선에서도 낙선하며 정치적 인생의 막을 내리는 듯했다.

홍 당선인은 이때도 다시 일어났다.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된 것이다. 이후 여러 위기가 있었으나, 회생한 뒤 2017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 직전에 있던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첫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당시 그는 24%의 득표율로 낙선했으나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다시 한번 당 대표에 당선된 홍 당선인은 '막말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끝인 줄만 알았던 그의 정치 인생은 2020년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 다시 불씨를 살렸다. 대구에서 무소속 출마라는 승부수를 띄우며 당선된 것이다. 이후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청년층의 파격적인 지지를 얻으며 지지율을 40%대로 끌어올렸으나 당심(黨心)을 잡지 못해 패배했다. 이후 홍 당선인은 대구 미래 50년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소명으로 지난 3월 대구시장에 출마한다. 당내 경선에서 전·현직 대통령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는 경쟁자를 따돌린 그는 일찌감치 대세론을 앞세우며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민경석기자 mea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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