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두대간 자생식물 이야기 <9> 쥐똥나무

  • 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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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4 07:49  |  수정 2022-06-24 07:53  |  발행일 2022-06-24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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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6월 어느 휴일, 산책 삼아 주변 공원을 찾아 나선다. 달콤한 아까시나무 향기에 향기로운 비누 같은 분 냄새가 더해진다. 역시나 쥐똥나무 꽃 향기다. 봄을 장식했던 벚나무·개나리·생강나무는 뒤편으로 물러나고, 녹색 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자잘한 흰 꽃을 피워댄다.

쥐똥나무는 개나리·진달래와 함께 우리 땅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다. 가로변·산책로·공원·아파트 단지 등에 생 울타리용으로 흔히 심는다. 그래서 누구나 흔히 봐 온 꽃나무지만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을 꽃나무다.

쥐똥나무는 늦봄에서 초여름, 5~6월까지 흰 꽃을 피운다. 이 시기에는 유독 흰 꽃을 피우는 나무가 많다. 찔레·조팝나무·이팝나무·산딸나무·함박꽃나무가 그렇다. 식물 입장에선 갖은 색소를 조합해 화려한 색상의 꽃을 피우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이맘때 피는 흰 꽃나무들은 꽃을 피우는 데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상대적으로 향기에 투자해 벌·나비 등의 수분 매개체를 유인한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식물의 전략은 다양하면서도 정확하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쥐똥나무는 물푸레나무과 식물로 한국과 일본이 원산이며 추위에 강하고 공해에도 잘 견딘다. 강한 전정에도 잘 견뎌서 생울타리용으로 심어 원하는 수형으로 가꾸기 쉽다. 개나리·회양목·영산홍 등 생활 주변에서 생울타리용으로 적합한 나무가 여럿 있지만, 다발로 피는 흰 꽃, 향긋한 향기, 벌들이 좋아하는 화밀, 겨울까지 오래 달리는 검은 열매를 고려할 때 쥐똥나무만 한 꽃나무가 없을 것 같다.

검은색 열매가 쥐똥을 닮았다고 해서 '쥐똥나무'라 불린다. 10월에 검게 익는 열매는 겨울까지 오래 달리는데,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새의 먹이가 된다. 쥐똥나무 열매는 '남정실(男貞實)'이라고 하며, 남성의 기운을 돋우는 민간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예로부터 강장, 지혈 효과가 있어 허약체질·식은땀·토혈·혈변 등에 사용을 해왔다. 겨울철에 검게 익은 열매를 말렸다가 가루 내어 먹거나 달여 먹는다. 열매 가루를 차로 섭취하면 원기를 보충하고 당뇨·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전국의 산기슭이나 숲 가장자리에 흔히 자라는 쥐똥나무는 키우기도 쉽고 번식시키기도 쉽다.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는 발아율이 높고, 장마철에 새로 나온 가지를 잘라서 삽목을 하면 뿌리가 쉽게 내린다. 값싸게 구입한 쥐똥나무 묘목 두세 그루로 얼마든지 쥐똥나무 화단이나 정원을 만들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수목원에도 감미로운 향기에 더해 보라색 꽃을 피우는 라일락에 비해 쥐똥나무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사실, 식물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그저 제철에 맞춰 꽃을 피우고 바람·곤충과 같은 수분 매개체를 통해 열매를 맺고, 열매를 멀리 퍼뜨리는 본연의 일에 집중한다. 때에 맞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인간에게 울타리를 제공하고 꽃, 향기와 화밀, 열매를 선사하는 쥐똥나무에 배울 점이 많다. 여름을 앞둔 시점에서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하면서도 그 누군가에겐 울타리나 그늘이 되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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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식물양묘연구실 대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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