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조선 3대 도시 대구는 어디로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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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3 17:24  |  발행일 2026-08-24
동서 80리 조선 최고의 땅
서울 평양 이은 화냥연화
자부심의 저편에는 개탄이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논설실장

100여년전 대구는 상대적으로 찬란했다. 비록 일제강점기였으나 조선 팔도 3대 도시였다. 서울(경성), 평양, 대구 순으로, 당시 표현으로는 남방의 수부(首府)라 했다. 도시 순위로만 본다면 대구의 화냥연화(花樣年華)라 할까.


300년 경상감영의 전통을 보유한 대구는 121년 전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한반도의 중심축이 되었다. 1900년대 초 2~3만 명에 불과하던 대구 인구는 1930년대에 이르면 2만7천여명의 일본인을 포함해 10만의 대도시가 됐다. 동서 80리에 펼쳐진 조선 최고의 땅이라고 했다. 사법권은 영남은 물론 호남까지 관장했다.


우연히 책장에서 꺼내 읽은 '근대 대구와 대구 사람들'(이호 엮음)은 예나 지금이나 도시를 향한 열정과 고민은 비슷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책은 1930년대 당시 유행한 대중잡지 '별건곤' 등에 기고된 대구 얘기들을 발췌해 소개하는데 자부심을 한껏 전제하면서도 도시의 현실을 개탄하는 대목들이 흥미롭다. 인구로나 부력으로나 평양이나 개성 아래가 아닌 실력을 가진 3대 도시 대구가 서울과 평양에 자꾸 뒤처진다는 자각이다.


상공인 서상일은 '대구상공계 일별'이란 기고에서 "평양에서 융성한 현대 산업도시의 분위기가 어찌 우연이라 하랴...대구상공협회가 조선 최초로 창립된 지 4년이 지났으나 오직 빈 간판만 달성공원 앞 조양회관 기둥에 걸려 있을 뿐이다"고 했다. 대구상공인들의 분발을 촉구한 글이다.


필명 운정의 기고는 노골적이다. '중앙통 일대는 제법 현대도시의 번화가를 보여주고... 버스가 다니고 골프장이 있고 비행장이 입에 오르내리고, 삼남의 대도시로 면목은 훌륭한 모양이나... 청년과 학생은 나약하고 대중은 못 죽어서 연명하고..."고 적었다. 앙소생(仰嘯生)을 필명으로 쓴 이는 문 닫고 사는 불출부접(不出不接)식 대구의 폐쇄성을 거론하며 "그날 그날 만성질환자처럼 방향 없이 걸어가는 대구는 어디로 가나"라고 개탄했다.


2026년 오늘의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 주인 없는 그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주식회사가 생긴 이래, 아니 인류 역사상 최대 순이익을 내는 기업이 한국에서 탄생될 것이란 예측마저 나온다. 허나 대구로 좁혀보면 처지가 다르다. 조선 3대 도시 대구는 해방과 6.25를 거치며 항구도시 부산에 밀렸다. 언제부터인가 인천에도 뒤처졌다. 충청의 대전은 제2수도 세종을 곁에 두면서 욱일승천이다. 대구는 첩첩산중이다.


광주가 800조원의 반도체 기지를 만든다고 온 나라가 난리다. 투자에 나선 두 그룹 중 하나는 삼성인데, 그 삼성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란 조그마한 무역상점으로 출발했다. 대구시민이라면 100여 년 만의 배신으로 느낄 법하다. 반도체 기지로 낙점된 광주의 군공항은 폐쇄키로 이재명 정권이 결정했다. 빠른 공사를 위해 공군 작전 편대의 일부를 경북 예천으로 옮긴다고 한다. 대구는 이제 광주에도 뒤질 초읽기에 몰렸다.


이런저런 자리에 가면 대구정치의 무력감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만약 박근혜나 윤석열 정권이 대구 군공항을 폐쇄하고 삼성 반도체를 들여놓겠다고 했다면 타지역의 반응은 어떠했을까라고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한쪽에서는 대구의 국회의원들이 이 난국에 이재명 대통령과 골프를 친 이유를 언론인인 당신은 아느냐고 묻기도 한다. '대구가 대통령 도시'란 말이 뭐냐고 짐짓 시치미 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필자인들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일제 강점기 나라와 도시를 걱정하며 '대구는 어디로 가느냐'는 글을 남겼던 그 심정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진정 대구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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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30년 현장 경험을 자양분 삼아 사설과 칼럼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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