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포도 한 송이

  • 백종현
  • |
  • 입력 2022-08-09   |  발행일 2022-08-09 제23면   |  수정 2022-08-09 06:53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을 유명하게 만든 마이니치 신문(1986년 5월14일자)에 실린 독자 투고 기사다. '우리에게 하늘만큼이나 큰 용기를 준 다카시마야 백화점 식품부 여직원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치료하던 11세 여자아이는 며칠 전 세상을 떠났으나 아이의 마지막 소원이던 포도를 먹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백혈병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상태에서 포도를 먹고 싶다는 소원을 다카시마야 여직원이 고맙게 들어줬다'라는 내용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 내용은 이렇다. 투고 기사가 세상에 알려지기 2개월 전쯤 모녀가 살던 도쿄의 변두리 단칸방에서 아이는 "마지막 소원으로 포도가 먹고 싶다"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포도를 사기 위해 도시 곳곳을 뛰어다녔으나 냉장기술이 부족한 3월이라 포도를 구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다카시마야 백화점 식품부 포도를 발견했으나 엄마의 주머니에는 2천엔밖에 없었다. 두 송이로 포장된 포도 가격은 2만엔이었다.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 포도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발견한 백화점 여직원은 가위로 과감하게 포도를 잘라 팔았다. 포도 가격의 10%를 팔아 나머지 90%는 상품 가치가 떨어졌으나 '손님의 요구는 차별 없이 최대한 들어주라'라는 백화점의 방침에 따라 여직원은 과감하게 가위질을 했다. 당시 여직원의 용기는 아이의 치료를 맡았던 의사가 신문사에 투고해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를 읽은 1천만명의 도쿄 시민은 눈시울을 붉혔다. '빈부에 따라 손님을 차별하지 말라'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초대 창업주와 손님의 입장을 먼저 배려한 여직원의 용기가 최고의 백화점으로 만든 것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