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산책]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억울한 감옥살이 속 햇살처럼 스며드는 '인류애'

  • 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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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02   |  발행일 2022-09-02 제21면   |  수정 2022-09-0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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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생애와 진실의 문학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은 '러시아 문학의 불굴의 전통인 도덕적 힘을 계승했다'는 찬사와 함께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벨상을 기점으로 작가는 소련에서는 반역자로, 서구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고발하는 양심과 저항의 상징으로 양극단의 운명에 처해 진다.

솔제니친의 문학은 자신의 삶과 역사적 체험에 근거한 생생한 육필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암병동'은 8년에 걸친 작가의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붉은 수레바퀴'와 '수용소 군도'는 자신의 체험과 다른 사람들의 역사적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1962년 솔제니친은 가까스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1960년대 자유화를 알리는 일대 사건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그는 작품 출판금지와 작가동맹 제명이라는 가혹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솔제니친은 공개서한을 통해 정부와 작가동맹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그 서한들이 서구에 전해지면서 그는 세계적인 저항의 지식인으로 부상한다.


죽 한그릇 더 먹는 일에 일희일비
20세기 러시아 역사 생생히 그려내

현실비판 소설로만 해석땐 아쉬움
이기적인 주인공이 나눔 시작하며
수용소 안에서 자라나는 희망의 싹
그 위대한 순간 문학적 구현한 소설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를 몰래 해외에서 출판했다는 이유로 1974년 마침내 반역죄로 체포돼 해외로 추방당한다. 이후 미국에 정착한 솔제니친은 이데올로기 선전전의 훌륭한 상징물로 활용되었지만, 다른 한편 서구 자본주의에 대해 차가운 태도를 견지하며 한적한 버몬트주 산골에 칩거한 채 러시아어와 러시아적 생활을 고집하는 등 다소 괴짜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1994년 솔제니친의 귀국길에는 수천 명의 열렬한 환영 인파가 뒤따랐다. 이후 솔제니친은 국수적 애국주의를 주창하고 서구의 간섭과 이데올로기적 침투를 비난하는 등 다소 극우적일 정도의 정치적 행보를 보였고, 2008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행복한' 하루와 역사의 불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하루를 통해 20세기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마 모든 문학서가 바로 이렇게 이 작품을 요약하고 소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런 독법에만 머문다면, 간단한 요약본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 새롭게 이 소설을 손에 든다면 우리는 도식적 독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소설의 재미와 진경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면을 발견하고 단순한 사실 폭로나 현실 비판을 넘어 삶과 문학의 본성에 닿아 있는 솔제니친 문학의 정수를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했는데, 독일군 첩자라는 부조리한 혐의로 10년 형을 받고 현재 8년째 복역 중이다. 그는 그저 죽 한 그릇을 더 먹거나, 약간 유리한 작업 부서에 배치를 받는 등 약삭빠르게 약간의 편익을 도모하는 일에만 열중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그런 하루가 슈호프에겐 운이 좋고 행복한 하루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에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기껏해야 죽 한 그릇을 더 얻어먹을 수 있었던 슈호프의 하루, 이런 하루가 '행복'했다니?! 분명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감옥을 묘사할 때 비참한 상황을 극대화하기보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오히려 더욱 공포를 느끼게 되는 솔제니친의 냉엄한 리얼리즘을 목도한다.

하지만 작가는 비참한 수용소 생활의 묘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벽돌 쌓는 작업을 배정받은 슈호프와 동료들은 각자 편하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막상 일이 시작되자 슈호프는 오직 일 자체에 빠져든다.

'이제 슈호프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 슈호프는 오직, 이제부터 쌓아 올릴 벽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일에 열중한 슈호프의 모습에서 강제노동이라는 비극적 분위기는 사뭇 사라지고 일 자체에 대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모르타르를 빗고 벽돌을 나르며 함께 일하는 반원들도 어느새 자발적으로 빠져든다. 마치 신나는 잔치와도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노동의 기쁨을 맛본 후 슈호프는 평소와 다르게 반장에게 대등하게 말을 건네는가 하면 금지된 줄칼을 몰래 반입하는 용기를 내고 남에게 얻은 '소중한' 비스킷 하나를 옆 침상의 알료쉬카에게 나누어주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하던 슈호프가 이젠 가장 약하고 선량한 알료쉬카에게 적선을 베풀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오늘 하루 노동의 기쁨을 맛본 자의 고양된 내면의 효과가 아닐까.

이런 장면은 견고한 일상의 벽에 균열을 일으키는, 그 균열의 틈새를 인간의 생명이 파고 들어가는 희망의 싹틔우기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삶을 희망으로 일깨워 가는 작은 자유의 몸짓이며,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사회정치 혁명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 그 몰락의 분명한 원인 중 하나는 인간 활동의 이러한 미세한 생성의 계기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이 장면을 비참한 일상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렸을지 몰라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위대한 순간을 문학적으로 구현해 낸 것은 아닐까.

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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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은 교수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경북대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러시아 소설론'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을 강의하고 있다.

소설을 인간과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고, 소설 속 인물이 주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보여주는 사소하면서도 위대한 움직임에 주목하길 좋아한다.

경북대 기초교육원장과 교무처장을 역임한 바 있고,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 역량을 제고하고자 설립된 <사>인문사회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혁명의 문학 문학의 혁명 막심 고리끼' '변혁기 러시아 문학의 윤리와 미학' '러시아 소설의 형식적 불안정과 화자' '반성과 지향의 러시아 소설론' '미하일 바흐친과 폴리포니야' 등이 있고, 역서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은둔자' '레프 톨스토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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